나의 발렌타인

아래는 Eliot 스타일을 살려 재구성한 시 〈Your Valentine〉의 한국어 번역·개작본입니다.
시간의 순환, 침묵, 여백, 사유의 깊이를 중심으로 시적 리듬을 살려 옮겼습니다.


나의 발렌타인

20세기의 숨겨진 발렌타인—
그 뿌리는
3세기 한겨울의 하루,
2월 14일로 내려간다.
로마의 성 발렌티노,
그는 전쟁의 명령 앞에서
침묵으로 쓰러졌고,
사람들을
죽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결혼으로,
연약한 희망의 가정으로
묶었다.

때론 시간이 앞으로 가지 않는다.
그것은
되돌고,
가라앉고,
기다린다.

1980년 9월 13일—
대한해협을 건너
김대중은 돌아와
공포의 재판정 앞에 섰다.
선고: 사형.
메아리:
숨을 멈춘 역사.

1967년 11월 9일—
동백림 사건.
무거운 고발의 공기.
정하룡, 윤이상, 그리고 네 사람—
그 이름들은
생과 소멸 사이에
매달렸다.
12월 3일:
무기징역,
침묵의 유예.

역사는
의미를 잃지 않는다.
다만
내일이 말해주기를
기다릴 뿐.

“그렇다면,”
정하룡은 묻는다,
“우리는
내일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강원의 감자바위에서,
경기와 서울을 지나
파리로—
심문과 추방,
유럽의 긴 회랑을 건너
프랑스 정부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이
그의 어깨 위에
가볍게 놓인다,
마치
사과가
고개를 숙인 듯.

그리고 그는
역사의 고요한 복도로 들어가
빛을 그린다—
20세기를
떨리는 선으로,
고통이 증언이 되고,
증언이 기도가 되는
그 자리에서.

오늘,
김대중과
정하룡—
그들의 삶은
어두운 흙,
부서진 흙,
그러나
비옥한 흙.
우리는
그 위에 서 있으면서도
발아래의 깊이를
알지 못한다.

한반도 위로
성스러운 물결이 흐른다—
신단수에서,
홍산 문화를 지나
피와 글과
밭과 돌을 통과하여.
정치와 학문이 충돌하고,
경제와 지도력이
산등성이를 오른다.
모순과 갈등은
세대를 숨길 만큼
깊은 골짜기를 판다.

그럼에도
강물은
멈추지 않는다.

통일된 한국을 향하여,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전환—
화해는
거스를 수 없는 강이 되어
만주의 평원에서
한라봉의 능선까지 흐르고,
마침내
온 세상 땅마저
평화의 문법을
배우게 하리라.

여기—
지금—
역사의 작은 멈춤 속에서
숨겨진 진실이
조용히 숨 쉰다:
김대중과
정하룡,
그 얽힌 뿌리.

기억이 아니라,
씨앗으로.

과거가 아니라,
약속으로.

— 윤 태헌
2026년 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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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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