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일구며

봄을 싣고온 비가 서너차례 뿌려진 후, 집 앞뒤의 잔디밭은 진초록 빛과 향취를 마음껏 토해내며 환희의 찬가를 부른다. 물오른 가지마다 겨울내 숨기고 있었던 그 보송보송한 얼굴들이 하루가 다르게 들어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이 괜시리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한 해의 목사관 생활이 아무리 바쁘고 눈코뜰새 없어도 봄이면 작은 터밭을 일구어 채소를 가꾸고 꽃들을 키우는 일은 내게있어 빠트릴 수 없는 년중 행사의 하나이다. 뿌린대로 자라고 심은대로 거둬들이는 자연과의 묵계는 내게 무한한 기쁨과 정신적인 쉬임을 갖게한다. 올해는 새 목사관 주변에 무엇을 심을까 궁리하던 중, 일년생 화초보다는 한번 심어두면 해마다 피어나는 넝쿨 장미와 포도나무를 심기로 작정하여 묘목을 주문하였더니, 몇주만에 소포가 도착하였다. 흥분한 마음으로 도착한 포장지를 뜯으며, 빨강색과 노랑색 흰색의 넝쿨장미가 어우러져 목사관을 덮은 모습을 상상한다. 그 진한 향기가 어느새 창문을 넘나드는 것 만 같아 콧노래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모양새가 거칠고 왜소해 보이는 포도나무 묘목을 옮기며 주렁주렁 열려질 탐스러운 포도송이들이 어느새 두손으로 움켜쥘 것 만 같아 솔로몬 왕의 정원이 부럽지가 않은 부유한 마음 으로 가득찬다.

일년에 한번 흙을 일구는 일은 경쾌한 일이다. 발에 힘을 주어 힘껏 삽질을 한 후 흙을 뒤엎을 때면, 늦잠을 즐기던 분홍색 지렁이들의 혼비백산한 꿈틀거림은 안스럽기도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지렁이 뿐 만이 아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작은 미생물들이 갑짜기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에 놀라 칙칙한 어둠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들을 볼땐 흙속에 생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물체 하나하나까지도 돌보시며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자상하신 손길을 엿보게 된다. 흙을 통한 하나님의 미래의 약속은 언제나 틀림없다. 한알의 씨앗의 생명체가 일만년 이상을 간다는 과학자들의 증거가 아니더라도 흙속에 묻어두신 생명체의 신비는 산천초목에 축복의 잔으로 이미 넘쳐 흐르고 있다.

그동안 수년간을 일년생 꽃들과 채소들을 목사관 주변에 심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까지는 만족할 만큼 아름다운 꽃송이를 피운다거나, 탐스러운 열매들을 거두지를 못했다. 정성을 기울여 돌보았어도 겨우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연약한 꽃송이들과 열매 없이 잎파리만 무성하다만 호박이나, 뒤늦게 연 익지않은 토마토의 시퍼렇고 뻣뻣한 떯은 맛들은 봄부터 여름내내 정성을 기울여 물을 주던 나에게 적잖은 실망을 주곤하였다. 그리곤 혼잣말로 늘, ‘이 땅은 거친 땅이야! 전혀 거름기라곤 없는 척박한 땅이니 열매가 있을수 없지!’ 하며 실망했다. 어느날, 교인 가운데 “초록의 엄지 손가락”이란 별명이 붙은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 분에게서 비법을 배웠다. 그 분의 집에는 늘 싱싱한 채소와 아름다운 꽃들이 무성하여 이웃들도 여름이면 그분의 밭에서 자란 채소들과 꽃들을 한번쯤은 선물 받기가 일쑤였다. 그분의 말씀은 가을이되면 이미 내년엔 무엇을 어디에 심을지 미리 구상을 하여 씨들을 주문한단다. 그리고 여름내내 영양분을 빼앗긴 땅을 위해, 초겨울에 퇴비를

사다가 골고루 흙과 섞어 뿌린다음 겨울내내 충분히 쉬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햇볕이 많이 필요한 식물들과, 햇볕이 종일 내려쬐지 않아도 잘자라는 식물들을 구분하여 그 땅에 심어 주고 정기적으로 물과 비료를 충분히 주면 별 어려움없이 잘자란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주님을 믿노라면서 말씀과 기도가 없어, 거두지 못할 열매들과 꽃피우지 못할 일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헛수고와 땀을 흘리었던가? 황폐한 내 삶의 정원에 이것저것 심고, 굶주린 심령 위에 풍요를 기대한들 무엇을 거둘 수 있으리요? 하루에도 수 많은 전화와 만남은 우리를 언어의 홍수속으로 밀어넣는다. 그러나, 진정한 언어와 서로간에 진정 꼭 필요한 말들과 축복의 말은 얼마나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올해도 봄은 이상한 신비를 담고 우리를 찾아 주었다. 집안에 만 있던 사람은 따스한 햇볕 아래 걷기를 원한다. 사람마다 사랑하고픈 뜨거운 열정이 솟는다.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 아래서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사랑의 노래를 불러보고 싶어한다. 온 누리에 새 생명의 출발을 알리는 이 봄, 나의 인생의 봄은 몇번 남아 있을까? 손꼽아 세어보며 분주한 일상에서 나의 “삶의 터밭”을 돌아본다. 그리고 흙속에 숨어 있는 생명의 신비와 보화를 캐듯, 내속에 숨어 아직도 겨울 잠을 자고 있는, 하나님의 신비를 이 봄엔 캐어 내리라. 그리고, 이 봄에 내 생에 가장 아름답고 탐스러운 그 한송이의 꽃을 기다리며 봄을 일구어 본다.

– 윤 완희, <1994년 4월 18일 >

The current image has no alternative text. The file name is: generate-a-vibrant-and-detailed-image-of-a-lush-spring-6.png
Unknown's avatar

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Essay by WanHee Yoon, faith-column.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