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장재식 목사를 기리며…
“제번 하옵고… 작은 것이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보내드립니다. 장목사님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 속에 건강이 회복되시며, 가족들에게는 큰 기쁨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길 기도합니다… <뉴욕의 무명씨>
“지상으로 장목사님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주님의 치유의 역사가 있으시길 기도합니다… <미주 한인예수교 장로회>”
“장목사님을 돕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내어 애쓰시는 모습 감사하옵고, 그 위하는 마음과 모습자체가 장목사님과 가족에게 힘이 될 것입니다… <북일리노이즈 연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하시는 치유의 은사가 장 목사님 위에 함께 하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총회 고등교육 성직부>”
“장목사님이 투병하실 때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주시고, 가능하시면, 쾌유의 기적을 보여주시기만을 이 작은 정성과 함께, 저희 가족들의 기도 속에 늘 기억합니다. <H 목사>
지난해 12월, 전국 미연합감리교회 앞으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장재식 목사의 쾌유를 위한, 사랑의 기도와 후원 요청이, 뉴욕연회 한인교회 협의회로 부터 전해지게 되었다. 비록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던 젊은 목회자의 투병 소식을 접한 이들의 가슴은, 안타까움으로 저들의 사랑을 전하는데 주저함 없이, 전국곳곳에서 봇물처럼 전해오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사랑의 손길은,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하나의 연합된 몸임을 확인 할 수 있었으며, 세상은 아직도 참 아름다운 곳임을, 우리 모두는 체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고 장재식 목사님의 백혈병이 발견 된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다. 평소 건강하고 활기 넘치는 목사님이, 감기기운이 영 개운하게 낫지를 않아, 가볍게 병원을 들렸다가, 주치의로부터 백혈병이라는 청천벽락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후, 곧 바로 코넷티컷의 뉴헤이븐의 예일 대학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뉴욕연회 한인교회 협의회에서는, 처음 장재식 목사님의 투병소식을 접하게 되자, 대부분의 목사님들에게는 낯선 이름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장목사님은 알라바마 연회 정회원이였으며, 교회는 동북부 선교구에 속한 선교교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목회자는, 목회자들이 돌봐야 된다는 합심된 마음은, 작년 11월달 협의회 모임에서 안건으로 수렴이 되었다. 그리고, 협의회에서는 장목사님의 보험이 만료되는(10/99) 시기를 속히 맞추어, 의료비를 도울 수 있는 후원음악회가 결정이 된 것이었다.
짧은 시일 안에 음악인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지난 해 6월에 목사안수(Permernant Deacon)를 받으신 이재숙 목사님이 선뜻 응하게 되어, 음악회를 속히 추진하게 되었다. 특히 이재숙 목사님은, 목사안수 받기 전에 오페라 싱어로서, 보스턴 음악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합창지휘자, 독창자이며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로 활약하시던 성악가이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목사의 길을 택하신 이재숙 목사님은, 과거의 훈련과 아픔, 고난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시는 분이었다. 이 목사님은 자신을 불러 목사로 세워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장목사님의 후원음악회에, 자비로 선뜻 연주하시게 되었음을 고백하셨다. 특별히 독창자로서, 음악회 준비의 여러 가지 미비한 가운데서도 몸을 아끼지 않고, 후원금을 모으는 일과, 진행에도 헌신적인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음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음악회에는, 뉴욕과 뉴져지, 코넷티컷등의 인근각지에서 모여든 교우들과 각 교회의 목사님들은, 젊은 목회자의 쾌유를 위한 안타까운 기도와 바램 한가지로 그 추운 겨울저녁을 뜨겁게 녹여나가게 되었다. 그 결과, 전국각지의 작은 교회, 큰 교회서 전해진 정성과 사랑의, 기도를 담은 편지와 후원헌금은 약 $35,000로 요근래 보기 드문, 후원헌금을 모금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누군들 지체할 수 있으랴! 안타깝게도 후원음악회가 있은 지, 이틀만인 12월 14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장재식 목사님은, 40세의 짧은 생애를 접은 신 채, 우리 곁을 서둘러 떠나게 되셨다.
장재식 목사님- 그분은 누구였는가? 고 장재식 목사님의 소개를 <미주 한인감리교회 백년사 제 3권>을 인용하면, 목사님은 대구의 기독교 가정에서 1959년 9월 25일에 태어났다. 미연합감리교회 테네시 연회에서 1991년도에 준회원 안수를 받았다. 1987년부터 미국에 거주하였고 가족으로는 박정미 사모와 이랑(딸. 10살)이가 있다. 장목사님은 1986년 연세대 신학과, 1990년 밴더빌트 대학 신학부(목회학 석사), 1995-1997 하버드 대학 신학부(STM)를 마쳤다. 목회 활동으로는 내쉬빌 한인교회( 1987-1990), 알라바마 버밍햄 한인연합감리교회(1990-1991)에서 시무 한바 있으며, 1991년 – 사망직전까지 그레이스 한인연합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었다. 사회봉사 및 후세교육의 일환으로 북미주 기독학자회 총무, 회계, 서기직을 역임했다. 목회철학은 “사랑으로 역사 하는 믿음” (갈5:6)이며, 토착화 신학과 종교신학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2천년대 목회의 꿈은 문화목회를 이루는 것으로, 한국문화와 토착정서를 접목한 목회를 하기 원했다. 저서로서는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마태복음 명상록)” “갈릴리 바다”가 있는 것으로 소개 되어있다.
장목사님을 가까이 알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게되면, 그 분은 목회자로서 너무나 맑고 진솔한 삶을 사신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코넷티컷의 페어필드(Fairfield, C.T) 지역은, 뉴욕 시에서 한시간 정도 들어가는 지역으로서, 한인인구가 거의 없는 곳이었다. 주일예배에는 약 25명 정도의 장년교우가 참석하는 교회를 시무 하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목장을 섬기는 일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목회 하는 가운데, 교우 한 사람 한사람을, 일당백으로 섬기며, 교육과 봉사, 선교훈련 뿐만이 아니라, 요한웨슬리 목사의 신학과 노선을 철저하게 따른 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목사님은 여선교회원들을, 연회의 선교학교와 각종 임원 훈련 등에 빠짐없이 보내어, 여성들의 선교사역을 통해, 병들어 가고 있는 인류사회를 이끌어 나가도록, 여선교회원들의 교육과 의식변화에 많은 심혈을 기울이셨다. 평소의 삶 속에, 예수님의 생애를 닮고 따르려는 그의 삶은, 분명 작은 목장의 큰 목자로서의, 남은 이들의 가슴에 큰 파문을 그리시며 떠나 가셨다. 지도자는 많으나 정녕 진정한 지도자의 삶이 무엇인가를, 묵묵히 삶으로 보여주셨던 고 장재식 목사님.
그 동안 교회와 교파를 초월한 모든 이들의 사랑의 손길은, 고인의 유가족인 박정미 사모님과, 딸, 이랑이게 전해졌다. 한 젊은 목회자를 위해 사랑의 가슴을 열고, 기도와 헌금으로 후원해 주신, 뉴욕연회를 비롯한 전국의 모든 교회와 성도님들, 목사님들께 정중한 감사를 드린다. 한 영혼이 하나님 앞에 소명을 받고, 진실과 성실로 응답하며 살았던 그 맑고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오래도록 공명 될 것이다.
윤 태헌 목사, 1/16/2000, (뉴욕연회 한인교회 협의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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