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부의 행복

우리 교우 중에, 수요일 아침이면, 우리 부부를 가끔 다이너로 아침식사를 초대하는 노 권사님 부부가 계시다. 수년 전에 세탁업으로 은퇴하시고 요즈음엔, 손녀딸을 봐주는 재미로 살아가시는 부부이신 데, 수요일엔 며느리가 쉬는 날이기 때문에, 두 분도 자유롭게 하루를 보내시곤 하신다.

이 분들과의 대화를 나는 늘 즐기는 편인데, 인생을 강직하게 살아오신 분들답게 생각이 늘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이고, 미국생활을 누구보다도 즐기며, 신앙생활이 삶의 전체 속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또한 권사님 내외분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세상이야기와, 그 분들의 손녀이야기 속에서 참으로 많은 지혜와 삶의 진리를 찾아 낼 수 있게 된다.

이 분들에게는 두 명의 결혼한 아들들이 있다. 큰아들은 5년전에 결혼하여, 4살된 딸이 하나있고, 둘째 아들은 2년 전에 결혼하여, 내년 초면 첫아기를 출생할 예정으로 되어있다. 우리는 무심코 대화를 나누다가, “내년에 출생할 둘째, 아기도 봐줄 테니, 데려 오라”고 했다는 권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어머나! 둘째 아드님 아기도요? 힘들어서 어떻게 둘을 다 보시겠습니까?” 하고 아연해 하는 나에게, 그 분들은 오히려 아이들을 봐주어야 될 지론을 펴셨다.

“내가 자랄 때, 우리 할머니가 늘 나를 엎어 키웠는데, 얼마나 나를 사랑해 주셨는지, 밭일을 하실 때나, 집안 일을 하실 때나, 한시도 날 등에서 내려놓지 않고 키우시어, 오죽하면 치마 말기가 다 썩을 정도로 나를 엎어 키우셨다고 해요. 난 지금 70을 바라보면서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을 결국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손녀를 키우면서, 우리 할머니가 나를 이렇게 키우셨겠구나 하는 마음을 늘 갖게됩니다. 우리 애를 가만히 보면, 그 조그만 머리로 하루종일 바쁘게 돌아가고, 의자에 오르락 내리고, 텔레비전을 켜대고, 장난감이 고장나면, 드라이버로 갖다대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의 역사를 보는 것처럼 다시 공부를 하지요. 그러면서도 아이는 한창 정신없이 놀다가는 내게 달려와, 가슴에 안기고, 머리를 함부로 감싸고 만지기도 하고, 그 조그만 두팔로 내 목을 꼭 껴안아주면서 얼굴을 비벼댈 땐, 내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이런 사랑을 어디서 받을 수 있을 까 하는 마음에 그저 가슴이 벅차고 희열이 넘치게 된답니다.” 하시면서 권사님은 얼굴을 붉히시고 눈물을 글썽이셨다. 평소에 엄하시기로 소문이 나시고, 자신의 행동을 늘 소신껏 하시는 권사님 안에, 이토록 부드럽고 따뜻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나까지도 감동이 되는 것은 물론이었다.

“우리 친구들 가운데서도 내가 애를 본다면, 미쳤느냐면서 펄쩍 뛰는 사람들도 있어요. 지금까지 평생을 고생했는데, 말년에 편하게 살아야 된다고 들 하지요. 그러나, 사람이 편해진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사람의 짓을 하면서 살 때가 가장 행복 한 것이 아닙니까? 미국사람들은 남이 버린 애들도 데려다가 굿은 일, 거친 일 다 감당하면서 대학까지 공부시키며 키우는데, 내 손자를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돌보는 일은 당연한 것 이지요” 나는 그분들의 대화 속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사람이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안에서 의미와 뜻을 찾아 행한다는 것 이상의, 보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문득 이런 예화가 떠올랐다. 1666년도에 영국 런던에 대화제가 일어나 전 도시가 전소되었었다. 그로 인해 성바울 대성전을 위시한 55개의 교회당이 전소하여, 챨스 2세는 크리스토퍼 워렌경에게 재건하도록 명하게 되었다. 워렌경은 어느 날, 공사장에서 일하고 있는 석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석공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자네는 뭣하고 있는가?” “저는 이 돌을 깎아서 저 벽에 맞추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워렌경은 다음 석공에게 물었다. “자네는 뭣하고 있는가?” “네, 저는 마누라와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고 일하고 있습니다.” 워렌경은 세 번째 석공에게 물었다. “자네는 뭣하고 있는가?” “네, 저는 대 성전을 건축하고 있습니다” 라며, 같은 일을 하고 있어도 각자가 다른 생각에 일에 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다. 이 예화는 무슨 일을 하든지, 의미와 생각, 비죤에 따라, 또한 그 일의 결과도 달라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은퇴 후에 집에서 애들을 본다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님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남의 손에 자손들을 맡기는 일은 아예 상상도 하지 않은 채, 사랑과 정성으로 한 미래의 지도자를 키우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오늘도 힘든 줄도 모르고 기쁨으로 감당하고 행복해 하시는 노 권사님의 모습이 참으로 존경스럽고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사실, 요즈음 같이 두 부부가 일을 하는 가정에 있어서, 자녀들을 돌봐주시는 부모님이 살아 계심은 참으로 복된 일이 아닐 수 있다. 자녀들을 부모님께 맡기는 젊은 세대들은, 그 분들의 수고와 애씀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과 사랑을 표현 할 때, 그 분들의 나날은 훨씬 행복하고 보람있는 삶이 될 것이다.

나는 노 권사님 내외분과의 즐거운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집에 돌아오면서 그분들의 손녀딸을 그려보았다. 까만 머리를 뒤로 짧게 매고, 앙징스러운 드레스 차림에, 이젠 교회의 친교실을 온통 뛰어 다니는 진희의 모습 속에서, 나도 손녀딸을 머잖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난생처음으로 하게되었다.

– 윤 완희, 10/6/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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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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