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눈 만 뜨면, 뒷마당에 나가서 청포도나무를 가꾸며 바라보는 것이 하나의 즐거움이자 기쁨이 되었다. 그것은 수년 전에 심었던 두 그루의 포도나무에, 올해는 수도 셀 수 없는 파란 포도송이들이 탐스럽게 매달린 것이었다. 그 포도송이들은 밤에도 쉬지않고 물을 올리어, 아침이면, 어제보다 배로 통통해져 갔다. 포도나무를 한번도 직접 키워 본 경험은 없었지만, 늦은 여름이면 탐스럽게 매달려있는 과수원의 포도송이들이 너무나 신비스럽고 부러워서, 끝내 묘목을 사다 심은 것이, 내게 그토록 보람과 기쁨을 안겨 준 것이었다.
올해가 7년째인가 보다. 첫해, 앙상한 몇 가닥의 뿌리가 겨우 나있던 포도나무 묘목을 정성껏 흙을 파고 묻으며, 나는 나무에게 속삭였었다. ‘너는 여기 흙에서… 나는 여기 목회현장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텃밭에서 함께 자라나는 것이야! 그 분의 사랑의 수분을 함께 받아먹고 마시면서 말이야!“ 나무는 유순하게도 나의 말에 동의하였다. 포도나무 묘목은 그해에, 땅에 뿌리를 내리느라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나는 머잖아 새들이 날아와 그 피곤한 날개를 접고 쉴 수 있는 쉼터를 제공할 포도나무를 그리었다. 그 봄날, 메마른 나무사이를 비집고 올라오며 부풀어오르는 생명의 만남에, 나는 감격하여 나무를 포옹해 주고 파 안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포도나무는 씩씩하게 잘 자라주었다. 무성한 이파리들과 한없이 뻗쳐나가는 가지들을 바라보면서, 다가오는 시간 속에 이미 열려질 포도송이들이 내 마음을 만족케 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해, 두해.. 햇수가 흘러도 나무는 포도송이들을 열 줄 모르고 있었다. 가만히 포도나무를 보니, 이파리만 무성해졌고, 그 몸체가 내가 상상하고 있었던 포도나무가 아닌, 제멋대로 형편없이 구불구불해 져 가고 있었다. 포도나무의 흉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대로 둘 것인가, 다듬어 주어야 될 것인가를 한동안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한 포도나무에서 태어난 것들인데, 잘라내기가 아깝기도 했었다.
어느 해 봄날, 새순들이 몽글몽글 여기저기서 눈을 뜨기 시작하자, 인정 사정없이 새 눈들을 떼어내며, 가지들을 잘라내기로 하였다. 가지 하나 하나가 정들었고, 순하고 천진한 창조물들이었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 멋진 포도나무를 생각 할 때, 더 이상 무례하게 솟아나고 있는 순들을 놔둘 수가 없었다. 나는 포도나무의 가지 하나 하나를 잘라 낼 때마다 참으로 괴롭기 그지없었다. 숨이 답답해 오기도하고 내 속에 숨어있는 자아의 가지들이 잘려나가고 있는 듯한 동질의 아픔마저도 느껴야 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해의 몇가닥밖에 안돼는 가지들에서는 처음 보는 좁쌀 알보다도 작은 포도송이들이 두 서너 군데서 모양을 갖춘 채, 맺어지고 있었다. 눈에도 잘 띄지 않을 정도의 너무나 가녀리고 보잘 것 없는 포도송이들이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바람, 천둥번개 속에서 하루가 다르게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모습은, 생명을 키우는 기쁨이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가를 다시금 느끼게 하였다.
이민 목회의 텃밭은 참으로 거칠고 메마르다. 교세가 크면 큰 데로, 작으면 작은 대로 시험과 아픔이 끊이지 않는 도전의 현장이다. 사랑하는 동료사모님들을 길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 얼굴에 스며든 수심의 깊은 함성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사모님! 늘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는 그 한마디에, 우리는 언어로 구사 할 수 없는 모든 이야기들을 나눈다. 그리고, 말없이 서로를 힘껏 안아 주며, “힘을 내세요!”하고 말하고 돌아서지만, 그녀의 힘없는 모습이, 내 모습이 되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오늘도 익어 가는 청포도나무 아래서, 언젠가 내 안에 단맛으로 익어갈 열매들을 그려본다. 주님의 정원에서 자라나고 있는 한그루의 포도나무처럼, 주님은 나에게서 잘라내야 만 될 가지들을 알고계시며, 언젠가 탐스럽게 내게 열릴 열매들로 인해 주님은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실 것이 분명하다. “순교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기도로 사십시오!” 하던 어느 은퇴하는 사모님이, 후배 사모들을 향해하시던 애정어린 말씀이 한 여름의 소낙비로 적셔져 온다.
– 윤 완희, 6/30/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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