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서 놓인 깃털처럼
우리는 떠난다—
그리고 우리는 말한다
떠남과 돌아옴은
두 개의 문이 아니라
하나의 문이라고,
서로를 향해 흔들리는.
우리는 그것을 상실이라 부른다.
어쩌면 그것은
오래 헤어졌던 아픔들이
다시 둘러앉는
한 상의 잔치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문지방에 서서
정죄하며 당신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다.
당신이 올 때에는,
낮게 흐르는 들판의 개울같은 울림—
세밀하게,
그 이름이 기쁨으로 불린다.
모두를 모이라,
모두를 먹어라.
이내 우리는,
겟세마네 언덕에 앉은 당신을
보지 못할 것이며,
갈릴리 해변의 발소리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당신을 보낸다—
눈물만이 아니라
노래와 함께,
그토록 가벼운 어깨에
무엇을 더 실어 나를 수 있겠는가.
당신은 우리 너머로 가고,
우리는 남는다,
당신의 생각은 촛불로 타오르고
며칠의 눈물을 흐르게 한 채—
숨이 멈춘 자리,
당신이 머물던 한숨,
골고다의 하늘을 담은 그릇으로 남는다.
이마에 얹히는
한 줌의 재.
우리는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기에 두려워한다.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기에
우리 속은
밤 잠을 설치는 생각은 그뿌리를 내린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본다.
말한다.
다시 말한다.
말을 장작처럼 쌓아
불길이 붙을 때까지.
그리고 불길이 오를 때—
그 상실과 상심은 하나가되여,
휘돌아 오르는 그 떨림은
일상의 숨돌림이
또 다른 비상이 아니겠는가.
그 소리는 퍼져 나간다—
산등성이와 들판을 넘어,
마을과 골짜기를 지나—
우리가 잠잠해진 뒤에도
언덕이 오래도록 되풀이하는
낮고 긴 울림.
그렇게 예수는 부활의 길을 떠난다.
바람을 타는
깃털 하나,
떠남으로
들어가는.
– 윤 태헌, 2/27/2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