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보내면서 산야가 타들어 간다고 표현하고픈 요즈음에, 교회의 연세 드신 어른들과 함께 엎스테이트의 포킵시에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생가와, 철도사업으로 성공한 갑부 밴더빌트 맨션(Vanderbilt Mansion)을 방문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되었습니다.
한여름 내내 벼르고 별러서 잡은 날이었는데, 그날 마침 가을비가 아침부터 온종일 내리었습니다. 그러나 버스 안에 몸을 싣고 비가 뿌려지는 창밖에 단풍을 바라보면서,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 좋아서 즐겁고 좋은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수년을 해마다 어른들을 위한 효도관광이었는데, 올해도 버스의 맨 뒤편에 앉아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기뻐하시는 모습을 뵈올 때, 참으로 가슴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 눈에 띄도록 쇠약해져 가는 어른들을 뵈면서, 왠지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이제는 거동조차도 힘이 들거나, 몸이 귀찮으셔서 참석치 못한 분들도 몇 분 계셨고, 함께 하셨던 어른들 중에도 하룻길 여행이 힘겨워 보이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함께 하셨던 분 중에는 한국의 최초의 여자 아나운서를 지내셨던 권사님도 계셨고, 교사로 은퇴하신 분도 계셨고, 공군 장교를 지내셨던 장로님도 계셨습니다. 또한 사회적으로 많은 일들을 하셨던 분이 있는가 하면, 이민 와서 한 가정이 일어서도록 손자 손녀들을 키우시고 가정을 푸근히 이끌어 오신 어른들도 계셨습니다. 몇 년 전 만하여도 연세에 비해 기백이 있으시고, 동작이 빠르시며 부지런하셨던 어른들 이였는데, 올해는 버스 안에서 찬송가를 부르시는데도 숨이 차서 헉헉대시는 것을 뵐 때, 마치도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는 낙엽과 같은 것이 우리들의 삶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이 노년기를 맞이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여러분들에게 재미있는 노랫말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마음도 몸도 왕성합니다/ 70의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지금은 안 간다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삽니다/ 80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아직은 빠르다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아무 것도 불만은 없이 삽니다/ 90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재촉하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우리들의 인생은 일흔 살부터 언제나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100세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서서히 간다고 전해주세요.
이 곡은 여행 중에 함께 하였던 권사님께서 부르신 곳이었는데, 가사가 마음에 와닿아 여러분들과 나누었습니다. 어떠십니까? 지금 들으신 노랫말과 같이 우리의 진짜 인생은 일흔부터 시작된다고 생각지 않습니까? 현재 몸이 편찮으시고 생활이 너무 힘드신 분들은 ‘무슨 소리냐!’고 야단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구차한 한세상, 천국에 빨리 가고 싶을 뿐이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노래의 끝말처럼 ‘백세에 우리들을 모시러 오면 서서히 간다고 전해주세요’하는 심정이 우리 모든 인간의 성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칠십수를 누리게 된다면, 저도 분명히 천국엔 가고 싶어도 빨리 가려고 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에 관계없이 과거를 돌이키면서 후회를 할 때가 있습니다. 아! 바로 그 시절에 내가 이런 생각과 결단 속에 있었다면, 지금보다도 훨씬 멋있고 보람있는 삶을 살터인데! 그때 그 좋은 시절로 돌아갈 수 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념 속에 그리움을 또한 더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삶이란 아무도 되돌릴 수 없기에, 로망 롤랑이라는 프랑스의 작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인생은 왕복 차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한 번 여행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저는 이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엔 왠지 이 말이 뼈저리게 느껴지고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삶의 속도를 언제부터인가 느끼기 시작한 후부터인 것 같습니다. 하물며, 70, 80, 90의 언덕을 오르고 계신 어른들의 체감속도는 젊은 세대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고 허무한 하루를 맞이하고 계실 것입니다.
사람의 삶의 단계를 나누어 보면,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로 볼 수 있습니다. 유아기는 소년기가 기다리고 있어 좋고, 소년기는 인생의 절정기인 청년기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한없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청년기는 생의 반려자를 얻어 사랑과 갈등의 꿈같은 시절을 지냅니다. 그리고 삶의 치열한 투쟁 속에 장년기에는 기쁨과 보람의 열매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노년기를 맞이하여, 은퇴를 해야 하고, 인생을 어느덧 정리해야 만 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지요.
저도 벌써 노년기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신호가 하나 둘씩 오고 있음을 직감합니다. 세아이들의 키가 저보다 더 커져가고, 컴퓨터와 인터넷에 아직도 서툴러 시대에 뒤쳐지는 듯한 느낌을 가질 때가 있고, 흰 머리카락이 마치도 단풍이 물들어 가듯이, 하루 둘씩 늘어 만 가고, 눈 밑에 주름이 자리를 잡아가는 외향적인 모습에서 만 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마음은 동심을 오가는 것을 발견케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 어른들이 “마음은 이팔청춘이다” 라고 하셨던 말씀들이 이해가 갑니다.
지금 방송을 들으시는 노년기를 보내시고 계신 어른들이나, 또한 아직도 노년에 대한 감각이 오지 않는 분들일지라도 노년기란 인생이 짚고 넘어가야 할 계단입니다. 그러면, 노년기란 진정무엇일까요? 머리가 백발이 되었고 육체가 노쇠하였으므로 노년기일까요? 아니면, 풍부한 지혜와 경험과 인생의 지식이 많은 시절을 노년기라고 할까요? 아니면, 인생의 허무와 좌절 속에, 죽음이란 초대장을 들고 하루하루를 손꼽아야 하는 무기력한 시간을 노년기라고 할까요?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는 명작 [레 미제라블]에서 “주름살과 함께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받을 수 있다. 행복한 노년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여명이 비친다”고 하였습니다. 이 노년기에는 인생의 많은 실패와 좌절, 성공을 거쳐왔기에, 젊은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특별한 가치의 차원 속에 살게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노년기를 맞이한 어른들이 젊은이들이 갖고있지 않은 보람과 생의 가치를 누리며, 인생의 경험과 연륜 속에서 얻어진 품위를 인정해 드리며, 행복한 시기를 보낼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와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어른들이 자녀들에게나, 젊은 세대에게 원하는 것은 어떤 물질이나 큰 것이 아닌, 너무나도 작으면 작다고 할 정도의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가을에 잘 익은 단 사과를 사들고 찾아간다거나, 좋아하시는 가을꽃을 한아름 안겨드린다거나, 평소에 좋아하시는 음식들을 만들어 갔을 때, 너무나 기뻐하시겠지요. 그런데, 어느 분이 말씀하시기를 연세가 들수록 돈이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돈은 혼자 맛있는 것을 사먹으려거나 집을 꾸미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못사는 자손들에게 한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부모님의 심정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인정을 베풀고 싶은 마음에서 돈이 필요한 것이라고 합니다.
연세가 들면 마음은 안 그런데 육신이 말을 듣지 않아 스스로 영혼과 육신이 약해짐으로 곧잘 슬퍼진다고 합니다. 자녀들의 무심코 던진 매정한 말 한마디, 노인이 뭘 아느냐는 태도, 무관심, 소외시킴, 외출 때에 무조건 홀로 집에 남겨놓는 습성… 이 모든 것들이 노년기를 맞으신 분들을 더욱 더 춥고 외롭게 만드는 요인들이지요.
“술주정뱅이가 자기는 술을 절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듯이 청년들은 자기가 영리하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체스터필드는 말하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존경받는 노년기를 맞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년기를 맞고 계신 어른들에게, 평생의 시간을 투자해서 얻은 지혜를 배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 지혜는 학교에서 학문을 통해서 만 얻은 것만이 아니라, 인생의 눈물과 고통과 평생의 시간을 투자해서 얻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의 권면을 잔소리로 듣고 넘긴다는 것은 모두에게 슬픈 일입니다. 청년을 “자연의 선물”이라고 한다면 “노년은 무르익은 예술의 극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의 어른 한 분 한 분들을 뵈면, 참으로 존경과 사랑으로 머리가 숙여지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 부모님 세대는 나라의 풍랑 속에 죽음을 몇번씩 건너온 분들로, 그 분들이 가르쳐주는 지혜의 현명함을 우리는 듣고 따라야 합니다.
초나라의 노래자라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60세가 지난 뒤에도 노부모를 위하여 일부러, 어린아이들이 입는 옷을 해 입고 부모님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고 재롱을 피웠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세대는 부모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는 세대가 아니라, 부모들이 자녀들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며 재롱을 피우는 시대라고 합니다. 노부모세대를 소외시키며 살아 갈 때, 우리의 자녀들도 언젠가는 우리를 소외시키리라는 장담을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잠언 16장 2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하셨으며, 레위기 19: 32절에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전에 우리의 할 일이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명령이십니다.
효도관광길에 저희가 잠시 머물렀던 Vanderbilt Mansion이라는 곳은, 허드슨 강줄기를 따라가다가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600에이커의 광활한 대지 위에, 18세기말에 지어진 초호화판 맨션이었습니다. 그 집은 50개의 방을 갖춘 대형맨션으로, 모든 가구와 물건들 하나 하나가 유럽에서 건너온 최고급 작품들이었습니다. 그 집을 돌보는 일꾼들만 하여도 50여명이 넘었으나, 주인은 봄가을에 잠시 와서 살고, 또 다른 곳에 있는 집들을 갖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그토록 엄청난 부를 누리며 궁전 같은 개인집을 지었던 Frederick Vanderbilt도 나이가 들어, 모든 것을 이 땅에 놔두고 떠났으며, 그 집은 결국 박물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인생의 노년기-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에 대한 숙제가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생애를 인도하신 하나님은, 노년기 이후의 영생의 삶을 보장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마음에 갖으며, 제 스스로가 위로함을 받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노년기를 맞으신 어른들이 삶의 품위와 아름다움을 맘껏 발생하며 살 수 있도록, 돕는 저와 여러분의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윤완희, 10/11/199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