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은 하루에도 수 십만가지의 생각과 공상 속에 사로잡혀 살 때가 많습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 가면 이리뒤척 저리뒤척하면서 삶의 모든 짐들을 끌어안고 씨름하다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도 머리가 무겁고 개운치 않으며 짜증만이 날 때가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이곳에서 경제적으로 성공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친구들을 제대로 사귀면서 학교 생활을 할까? 다른 아이들과 비교 할 때 성적이 떨어지면 어떨까? 무슨 음식을 먹어야 되는가? 내일 모임이 있는데 갈것인가? 가지 말것인가? 그 사람은 왜 나를 견디지 못하게 괴롭힐까? … 등의 생각은 대부분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생각보다는 부정적이고 불필요한 잡념으로 몰고나가기가 일수입니다.
이렇게 우리를 사로잡는 온갖 잡다한 것들로 부터의 해방은 과연 어디서 올까요? 예를 들어 약물중독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눈뜨자 마자 마약을 어떻게 더 구하여 오늘 하루를 지낼까 하고 종일 생각합니다. 노름에 빠진 사람들은 늘 슬럽머신에서 쏟아지는 돈을 생각합니다.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 만을 생각합니다. 일확천금을 생각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 돈을 쉽게 벌을까 하고 종일 생각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성군인 다윗 왕은 어느날 지붕 위에서 우연찮게 건너다 본 여인, 밧세바를 생각하다 끝내 간음과 살인을 저지른 후, 아들까지도 죽는 아픔과 고통을 그 영혼이 맛보아야 했습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도 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을 통해 인간은 끊임없는 발전과 성숙을 거듭했습니다. 상상을 통해 수백명을 실은 그 무거운 비행기가 하늘을 나르게 되었으며, 화성까지 올라가는 인간승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 상상력을 통해 무서운 화학무기 등의 전쟁무기를 개발하여 인간을 파멸시켰으며 죽음을 자초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상상력은 마치도 돛이 달려있지 않은 배와 같이 상상의 바다를 끊임없이 항해를 거듭하는데 이것을 바로 잡아주지 않으면 언제 어느 때 어디가서 좌초 당할지 모르게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 그 말씀을 믿고 들으며 묵상하는 일은 하루의 삶을 시작하기 전에 필수적인 영의 양식이 될 뿐 아니라, 항해를 시작한 배에 돛을 달아주는 것과 같습니다. 목적지는 정해져 있고 아무리 지체가 큰 배라도 돛이 없이 뜬 배는 바람이 불고 풍랑이 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풍랑 속에서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러나 돛이 있는 배는 비가오고 풍랑이 불어도 그 나아가는 길을 꾸준히 헤치고 갑니다.
그럼에도 이 생명의 말씀을 매일 챙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도 아침식사조차 할 시간 없이 눈만뜨면 학교나 직장으로 달려가야 될 사람들에게 아침 식사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일 보다도 힘들게 됩니다. 그러나 한 번 습관 만 드리고나면 아침을 걸렀을 때의 공복을 느끼는 것 처럼, 말씀 묵상을 거른 날은 온종일 불안하고 허기를 느끼게 됩니다.
제 경험에 미루어 보면, 말씀 묵상을 거른 날은 성령님의 지배 속에 내가 살아가기 보다는 나의 생각과 의지가 늘 세상 풍랑에 휩쓸려 가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아랑곳 없이 떠돌게 됩니다. 때로는 내 뜻이 하나님의 뜻 처럼 착각하고 살기도 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내 뜻대로 끌어내리려다가 끝내 좌충우돌하여 삶의 배까지 파산당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성경은 신비하여 어린아이도 그속에 들어가서 놀 수 있으며 코끼리도 잘못하면 빠져 죽을 수 있는 깊고 오묘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신비하고 놀라운 말씀이 우리 곁에 있는다는 것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인생길에 잘 마련된 지도와 같으며 생수의 근원 이상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 말씀을 묵상 함은 소의 사귐질과 같습니다. 소는 풀을 뜯어 먹으면 보통 8시간에서 10시간의 긴 사귐질을 하는데 일하면서도 먹는 즐거움을 갖으며 쉬는 가운데서도 그 기쁨을 최대한 만끽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기쁨과 만족함과 같이 말씀의 진미를 즐기게 될 때 그 이상의 기쁨과 만족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말씀 묵상은 우리 잠재력속에 기생하고 있는 죄의 그늘을 하나씩 하나씩 밝히며 생각의 흐름을 조정케 하게 되는데, 부정적이거나 깨끗치 못한 것, 연약한 것을 온전케 합니다. 내면에 담대함을 주고 사랑의 터전을 넓혀주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내 양식이 굶주린 영혼들에게까지도 넘치게 합니다.
오대원(Rev. David Ross) 목사님이 쓰신 “하나님의 말씀 나의 보물”에 보면, 정신과 의사들의 말씀묵상에 대한 보고가 나와 있습니다. 그곳에는 하버드 대학의 유명한 심장학 교수가 1994년 7월 호에 발표한 글 중에 “묵상이 현대인의 스트레스 해소에 가장 좋은 방법인데, 그리스도인의 성경 묵상이 육체적, 정서적 치유에 큰 도움이 된다” 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고 했습니다.
또한 이 말씀 묵상을 통해 교회의 지도자들인 클래보어의 버나드, 십자가의 성요한, 성 안토니, 성 어거스틴, 조나단 에드워드, 존 웨슬리, 마담 기용, 디트리히 본회포등이 있으며, 음악과 미술 등의 각 예술 세계에도 영향을 끼친 큰 인물들이 나왔다고 보고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은 메시야를 작곡한 헨델, 돌아온 탕자를 그린 렘블란트, 고아의 아버지인 죠지 물러 등의 이루 셀수 없는 인물들이 말씀 묵상을 통해 위대한 사역을 감당했다고 했습니다. 수천년 전에 일어났던 하나님의 사건들을 나의 심령 깊이 묵상했을 때, 위대한 예술가와 문학인들의 상상력 속에서 놀라운 작품들을 탄생시켰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영감에 찬 작품들이 우리 앞에 은혜를 끼칠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들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는 다니고 신앙생활은 하고 있지만,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빛을 가리는 이유는 그 영혼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음 문을 빗장으로 꽉 막
아 놓고 성경을 아무리 읽고 외운다 하여도 마음 밭에 깊게 심겨지지 않는 이상엔 아무런 상관이 없게됩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을 때와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기에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사람은 외모와 교양을 보고 그 사람이 좋다 나쁘다고 판단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 상 16:7)고 하십니다.
오늘 이 순간 마음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눈을 뜨자마자 산만해지려는 마음과 몸을 먼저 추수려 하나님 앞에 앉힙니다. 그러나, 시계를 들여다 보면서 몸이 자꾸만 일어서려는 유혹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만 겉돕니다. 습관적으로 읽긴 읽는데 금방 잊어버리고 머리 속에서 뱅뱅돕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을 이제는 단어 하나 하나를 짚어가면서 그 뜻을 알려고 노력합니다. 어느 날에는 금방 그 말씀이 내 심령 가운데 자리를 잡지만, 어느 날에는 너무 힘이듭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을 5번, 10번, 20번을 반복하여 읽고 또 읽으면서 잠시 침묵을 합니다. 그리고 기다립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내게 무엇을 주시려 하는가? 또 기다립니다. 혼란하던 마음이 잠잠하여지며 마음 문이 열려집니다. 그리고 내 영혼이 주님께 자리를 내어드립니다. 그 기다리는 순간에 하나님은 내 영혼의 밭에 말씀의 씨앗을 심으십니다. 침묵 가운데 미세한 음성으로 성령께서는 다가 오십니다. 그리고 종일토록 그 말씀에 사로잡혀 살아 갈 수 있는 힘과 능력뿐 아니라, 유혹과 어두움의 세계로 부터 이겨 나올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삶의 찌꺼기들인 분노와 아픔, 괴롬과 원망을 벗어버리게 하고 우리를 삶의 거룩한 중심으로 인도합니다.
위대한 인물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자녀를 훌륭한 예술가로, 문학인으로, 사업가로 세기에 기억되는 인물로 키우시기를 원하십니까? 영향력있는 사람, 역사적인 큰 획을 긋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말씀 묵상의 보물
상자를 열어보세요. 이곳에서 쏟아지는 위로와 치유, 꿈과 소망, 지혜와 권능, 성공과 담대함, 믿음과 순종, 씻김과 청결의 아름다운 보석들이 나와 당신을 멋지게 치장 할 것입니다.
우리의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다 보면, 에덴 동산의 아담과 이브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 곳, 아담과 이브의 맑은 웃음 소리와 새소리, 동산 안을 온갖 동물들과 함께 뛰고 달리며 해가 맞도록 노래하며 행복해 하던 사람들의 모습들!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였는지 우리의 모습은 변하여 그 맑고 밝은 모습은 어두워있고 슬픔과 상처로 얼룩진 지금의 내모습이 아닌가 돌이켜 봅니다. 때로는 병과 연약함에 시달려 내면의 세계가 완전히 지쳐서 일어 설 수 없을 때 거울 앞에서 “당신은 누구인가?“하고 묻게되지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이 비록 상하고 지침 가운데 있을지라도 “내 모습 이대로” 받아 주시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 묵상으로 시작한 하루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본래대로 돌리시기를 원하고계시지요. 마음의 초점을 주님을 위해 맞춰보세요.
또한 우리는 존귀한 자로 옷 입을테니 니까요.
이 주간에도 이 귀한 보석 상자를 아낌없이 열어, 그 생명의 말씀으로 승리하시는 날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 윤 완희, 10/28/1997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