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에서

어느 미국인 교회 주보에 [우리 자신을 치유하는 길]이라는 제하의 평신도가 쓴 글이 나와있었다. 그 글에는 “…우리 교회는 지금 어려움에 직면에 있으며, 그 뒷면에는 또한 분노와 아픔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도 화해와 서로의 이해를 구해야 될 때입니다. 우리는 새 목사님이 오시면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리라는 희망을 갖고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친구가 내게 말하길, 자신의 교회에도 같은 아픔과 희망을 가지고 새 목사님을 맞았지만, 결국 그들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말하길 진정한 치유란 우리 안에서 치유 받고자 하는 열망이 있어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말을 듣고 몹시 실망했습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어떻게 치유의 출발을 찾을 수 있을까?“ 저는 성경말씀을 찾아 근거를 얻기 시작했으며,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4가지의 저의 생각을 나눕니다.

1. 우리가 겪은 옳다고 생각하여 행한 각자의 모든 행한 일에 대한 경험을 그대로 서로

받아들이자.

2. 지난 아픔들을 더 이상 해결 할 길이 없음을 인정하며, 오늘의 시점에서 다시 출발하자.

3. 누가 맞았고 틀린 것에 대한 판단일랑은 모두 잊어버리자.

4.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지, 그 말은 상대방으로서 옳은 말이기 때문에 그대로 들어주자. 절대 다툼이나 편견을 갖지 말고 들어주는 일은 결코 서로를 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전임목사님이 하셨던 모든 일에 대해 생각을 이렇게 정리하면 어떨까요? “전임 목사님은 내게 어떤 삶의 의미를 찾게 하셨을까? 그 분으로부터 받은 신앙의 영감 및 도전은 무엇이었을까? 그 분은 무엇을 나로부터 변하게 하셨을까? 우리는 현재 무엇이 필요한가?” 라는 질문을 할 때입니다.“

몇 달 동안의 서로의 반목과 갈등 속에서 결국 담임 목사님을 떠나보내고, 그 빈자리에 선 성도들간의 화해의 손길을 서로 애타게 바라고 있는 글이었다. 한인교회 만이 문제가 많은 것 같으나, 미국교회 안에서도 만만치 않은 문제들로 인해 성도들이 아픔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 백인들로만 차있던 교회들이 흑인 및 소수계 교인들이 몰려올 때 심한 격동을 치루게된다. 특히 젊은 목사님들은 50, 60년대의 목회방법을 고집 하는 오래 된 교인들의 기대에 지쳐 힘이 쭉 빠져있다가, 젊고 비전이 있는 새 교인들이 들어 올 때는 목회에 새로운 힘이 솟는 것만은 사실이다. 서서히 교회 안에서 새 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의 개혁의 바람이 불게된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서로간에 원치 않는 반목이 자리를 잡게됩니다. 그 아에서 기득권 쟁탈이 벌어집니다. 교회는 이렇게 늘 세대차이, 의견차이, 신앙의 갈등, 인종문제 속에 도전을 받고 성장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인 곳- 그곳은 추한 자리가 될 수 도 있고, 창조와 아름다움의 산실이 될 수 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물과 기름이 갈라지듯이 사람의 마음은 어느 한편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결국 양편이 다 맞을 수도 있고 다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상처는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얼룩을 만들어 내고 만다. 헬렌켈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고 아름다운 것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도 없다. 그것은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라고 하였듯이, 우리 교회에 가슴으로 느껴오는 화해와 용서가 있는지 돌이켜 보게된다.

담임 목사님을 떠나보내고 아픔과 분노 속에, 진정한 성도간의 평화를 추구하는 교우들의 그 빈자리에서 얻어지는 교훈이 우리 모든 한인교회에도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

사람의 심성가운데 <기득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특정한 자연인이나 법인들이 장소를 차지했다거나, 먼저 그 일에 종사했다거나 했을 때, 기득권을 잡았다라는 말을 합니다.

과거 히틀러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유대인들을 멸종시킴으로 인해, 독일인이 세계의 기득권을 잡을 것이라는 착각 속에 600만의 유대인을 살해하는 범죄를 행했습니다.

우리는 미국에 와서 가장 가까이 느끼는 것이 인종차별이라는 것입니다. 먼저 이 땅에 이민 온 백인들의 기득권 속에 소수민족들은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합니다. 또한 흑인과 황인종들은 서로 기득권을 얻으려는 보이지 않는 알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속에 숨어있는 인종을 차별하거나, 남의 문화를 얕보는 태도는 인간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있는 기득권을 차지하려하는 마음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종관계 안에서 만 숨어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삶의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관계를 서로 고립시키며 담을 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는 군대나 학교, 감옥, 직장과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둘이 하나가 된 교회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어느 한인교회가 마음을 합하여 아름다운 성전을 하나님께 봉헌 한 후에, 한무리의 교우들이 교회를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해 할 만한 “그럴 수 밖에 없는 여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건들을 이기지 못하고 무리가운데서 떨어져 나감으로 인해, 소수의 성도가 남아 성전건축하느라, 빌린 은행 빚을 갚느라 애를 쓰는 예를 보면서 마음이 참 아팠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신문이나 방송매체의 오보에도 곧잘 걸려넘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신문에 기사 하나가 잘못나오면, 사회가 난리가 나고 국가가 흔들리고 세계가 위기 속에 휘말립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부의 오보에는 귀를 기울이고 난리를 내고 사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는 귀를 너무 기울이지 않고 살고있진 않는지 회개케 됩니다.

“영적인 세계는 변두리로 밀려 날 수 없다. 그 세계는 언제나 미개척의 변경이다. 만일 우리가 그 세계에서 살고자 한다면, 우리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 상태의 세계를 받아들이고 또한 기뻐해야 한다”고 하워드 메이시라는 분은 말하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죄로 길들여지고 그렇게 살아왔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사람이 된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새로운 영적인 삶을 영위하고 산다는 것은 마치도 미 개척지를 개발하는 것 이상의 어려움과 노력과 열정이 필요케됩니다. 그러다 보니 또 과거의 죄속에서 길들여진 방법대로 살기를 좋아합니다. 왜냐면 그일은 힘이 들지 않고 노력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요.

구원받은 성도들 가운데 서서히 일어나는 기득권 경쟁은 그리스도의 몸을 산산히 나누는 일을 합니다. 우리 한인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당수의 문제점 중의 하나가 기득권 경쟁이라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 문제로 많은 교회들이 앓고 있습니다.

— 윤 완희, 8/19/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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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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