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고(故) 닐 어윈 목사님의 삶과 사역을 기리고, 제 영혼 깊은 곳에서 그분과의 관계를 마무리하기 위해 섰습니다. 영적인 작별 인사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이 자리에 서니, 마치 시간 캡슐을 타고 1984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때 저는 영어로 “Yes”와 “No”밖에 할 줄 몰랐고, 대부분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나 몸짓 언어로 의사를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설교는 오직 원고를 읽는 방식이었고, 발음은 무거운 한국 억양이 묻어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우들은 저를 너그럽게 받아주시고, 설교자로 받아주셨습니다.
닐은 우리가 콕삭키(Coxsackie) 교회 사택에 이사 왔을 때, 그 낯선 아시안 가족을 따뜻하게 맞아준 이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큰 체구에 해맑고 순수한 웃음을 지으며, 품에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민소매 흰 티셔츠를 입고 있었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첫 주일 예배 후 몇 주가 지나, 저는 그의 부모님 댁에 심방을 드렸습니다. 그의 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나는 애 만드는 사람이오. 닐이 큰아들이지요. 자식 셋 다 장성했고, 손주 둘이 있답니다.” 그 말 한마디에 이 가정이 얼마나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누렸는지를 느꼈습니다.
이제, 저는 닐 목사님의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는 제 사역의 ‘소울 메이트’였습니다.
• 저희는 같은 해에 태어났습니다.
•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을 나눴습니다.
• 서로에 대한 신뢰로 늘 “예스”라 말하며,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걸었습니다.
그는 ‘천사’ 같았습니다. 늘 날개 아래서 우리를 감싸 안아주었습니다.
1. 1985년 12월 29일, 크리스마스 직후 폭설이 내릴 때, 제 아들이 태어났고 닐은 그 아기를 반겨주었습니다.
2. 청소년들과 함께 눈썰매를 타며 웃음을 나눴습니다.
3. 온 교회가 함께한 건초 수레 타기 행사를 기획했습니다.
4. 매년 지역 사회의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하며, 집에서 홀로 지내는 이들을 위한 배달 봉사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헌금을 모으고, 남성 봉사자들을 조직했으며, 새벽 4시에 칠면조를 오븐에 넣어 구웠고, 정오까지 모든 음식을 준비하여 직접 배달했습니다. 폭설이 내린 날조차도 포기하지 않고, 오후 4시까지 모든 집에 음식을 전달했습니다.
5. 매일 새벽 6시, 교회에서의 기도 모임에도 참여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저와 아내 완희가 홀로 기도하고 있는데, 닐이 들어오며 말했습니다. “이 기도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있을까요?” 저희는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섯이요—저와 아내,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 닐은 웃었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6. 그는 지역 사회 봉사를 위해 모범 수감자들과 함께 교회 천장을 설치하는 프로젝트도 이끌었습니다. 출소를 앞둔 12명의 수감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 우리는 성찬식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들은 제 아내가 그린 가시관을 쓴 십자가 수채화에 서명을 남겼습니다. 몇 년 뒤, 그들 중 한 명이 자신의 약혼자와 함께 교회를 다시 방문해 “여기에 내 서명이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수감자들과의 성찬이 끝난 직후, 닐이 제게 다가와 제단에서 축복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내 인생 전체를 주님께 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이끄실지 알 수 없었지만, 주님의 영이 그를 부르고 있다는 것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가 늘 가슴에 담고, 애송한 말씀은 “거듭나야한다.”(요한복음 3장 7절) 였습니다.
이제 닐은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반갑게 만날 때를 기다릴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육체적 고통은 모두 사라졌고, 언제나처럼 하얗고 넓은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늘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긴 이야기를 나눈 것,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동남부 테네시의 애팔래치아 산맥에서 먼 길을 달려왔기 때문입니다.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경청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Cornelius Bogart “Pastor Neil” Irwin III
Birth: 23 Apr 1949, Catskill, Greene County, New York, USA
Death: 9 Jun 2016 (aged 67), Cobleskill, Schoharie County, New York, USA
Burial: Riverside Cemetery Coxsackie, Greene County, New York,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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