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신문을 읽다가 안타까운 뉴스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젊은 한국인 산부인과 의사가 불법 의료 행위를 하다가 경찰에 체포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유인즉, 신문에 임신중절 광고를 내어 임신을 하지 않은 스페니쉬계 여인들에게 무조건 임신중절 시술을 하여 수술비를 받아냈다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웰페어(welfare)에 의존하는 가난하고 불쌍한 젊은 여인들의 무분별한 성생활로 인한 원치 않는 임신을 중절하려는 심리를 이용한 거짓 진단으로 힘껏 장삿 속을 발휘했던 그 젊은 의사에게 동정(?)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의사 선생님들은 의술을 천직이라고 여기며 셀 수 없이 많은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봉사하는 분 들입니다. 그중 어떤 분은 진료실이 마치 인생 상담소와 같아 환자들 의 생활의 어려움까지도 치료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환자 중에 아이들의 대학등록금을 은행에서 빌리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 서슴없이 은행에 같이 가서 보증인이 되어 주기도 하며, 차를 사는 데 문제가 있다고 하여도 자동차 딜러에 가셔서 선뜻 보증을 서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환자 한 분 한 분을 그의 친구이며 가족으로 여깁니다.
아이들이나 노인들이나 젊은이들은 모두가 그를 존경하며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교회에선 목사님을 도와 열심히 교회 일에 앞장서며 충성하는 모습 속에 성도들은 그를 믿고 따릅니다. 가정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닮아 모든 일에 충성하며 신앙생활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민 1세로 이 땅에서 전문직을 갖게 되었을 때는 남모르는 수고와 노력, 밤잠을 못 자가면서 천신만고의 어려움을 이겨낸 결과임에 틀림 없습니다. 특히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일을 담당하는 의료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젊은 의사 선생님은 천신만고 끝에 얻어낸 의술의 기회를 인간의 본능의 날개에 달아매어 영원히 꺾이지 않고 날아주기만을 기대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남보다 탁월한 지혜와 노력의 대가를 자신만 의 목적을 위해 사용할 때 얼마나 추하게 추락하는가를 안타깝게 보게 됩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육신의 질그릇 속에 살고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형편없이 깨어져 버리고, 걷잡을 수 없는 추한 모습으로 나 자신조차도 혐오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남과 비교해 이쯤이면 성공한 것 같고, 유명해진 것 같고, 무언가를 붙잡은 듯하면 이웃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양심조차도 속이는 우리들의 모양새가 아닙니까? 고귀한 가치를 저버리고 이 땅에서 우리가 자랑하는 것들, 알고 보면 쓸모없고 아름답지 못하고 잠시 피었다가 시들어 버릴 풀의 꽃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일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추하고 보잘것 없는 육신 속으로 눈부신 생명, 그 희고 고우면서 불타는 사랑이 우리에게 허락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가장 진실하고 아름다운 것, 기쁨의 뿌리로서 하나님에게도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보배를 우리 육신의 질그릇 위에 담으신 것입니다. 그 값은 십자가 보혈의 피의 값입니다. 그분은 오늘도 사람을 향하여 안타까이 부르고 계십니다.
“나의 사람아! 나의 사람아! 그 시련 속에서, 아픔 속에서, 추함 속에 이 보배를 담으려무나! 삶의 탁류 속에 밀려 떠내려가는 사람아! 새벽 이 오기를 목메이게 기다리는 사람아! 절망의 절벽 위에 서서 깊은 한 숨을 내쉬고 있는 사람아! 마음 속에 평화가 없는 사람아! 나의 이 보 배를 네 안에 담으려무나! 이 보배를 담기만 하면 영혼에 파란 잎이 돋고 꽃이 만발하고 향기가 가득할 텐데… … .”
모든 사람은 같을진대, 그 영혼에 누구를 담고 있느냐에 따라 궁극적인 일의 목적이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기도 하고, 추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 7).
언젠가 그 젊은 의사 선생님에게도 이 보배를 담을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도합니다. 아마도 그날엔 그 보배가 너무 눈부셔서 그는 목이 메인 채 엎드려 통곡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영혼의 눈을 가렸던 육신의 비늘은 벗겨지고 개안의 환희 속에 뛰며 비로소 그 자신이 질그릇이었음을 고백할 것입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깨어지는 우리를, 새로 빚으사 그 귀한 보배를 담아 주시기 원하시는 주님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이 오늘은 더욱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