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교우 중에 마가렛 매고원이라는 부인이 있습니다. 세 명의 증손자까지 거느린, 올해 76세 된 마가렛을 볼 때마다 믿음 안에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고 끈질긴지 늘 깨닫곤 합니다. 그녀에게는 100세 된 친정어머니가 양로원에 계신데, 평생을 시력 장애인으로 사신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다섯 자녀들에게는 엄하고 절도 있는 어머니요, 손자 손녀들에게는 인자하신 할머니였습니다.
또 마을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의 유지이며, 교회서는 평신도 지도자인 동시에 성가대에서는 알토 파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불우한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로서 평생 140여 명의 양자 (Foster Children)를 돌보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수퍼우먼인 그녀는 남다른 좋은 환경이나 특별한 은사를 지녔다고는 볼 수 없는 지극히 평범한 경찰관의 아내였습니다. 약 10여 년 전에 남편이 타계하고, 지금은 장성한 손자 한 명을 데려다가 빈집을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6년 정도 그녀의 삶을 지켜보면서, 이젠 그녀가 모든 사회 활동과 교회 생활을 조금은 게을리하거나 흥미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으나,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담당한 일을 포기하거나 게을리하질 않았습니다.
마가렛의 자녀 중 둘째아들인 빌이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건은, 그녀의 삶에 지울 수 없는 흉몽이었습니다. 마가렛은 자신의 슬픔 속에서도 곧 정신을 차리고, 꽃 같이 아름다운 며느리의 슬픔을 속히 가라앉히려, 믿을 만한 청년을 주선하여 제2의 인생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며느리가 행여 과거의 충격으로 인해 임신하지 못할까봐 가슴 졸이며 기도하다가 임신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 누구보다도 기뻐하며 감격해 마지않았습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가슴에는 그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하였건만 그 후 4년 후에 막내아들 더글라스를 47세의 젊은 나이로 잃는, 또 한 번의 고통을 안게 되었습니다.
더글라스는 어렸을 때 고열로 인해 3개월을 무의식 상태에 있다가 깨어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해 뇌를 손상당했던 더글라스는 연령에 뒤지는 사고와 간질까지 앓게 되었습니다. 더글라스가 22세 때에 가까스로 운전면허를 취득하여, 첫 운전을 하러 나가서 이 차 저 차 부딪치며 거의 다 찌그러진 차를 몰고 집에 돌아왔을 때 온 가족과 이웃이 그를 자랑스러워하며 감격해 하던 날을 늘 말씀하시곤 하였습 니다. 그리고 그가 해군에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친 후, 제대 후엔 시청 국에 취직해 일자리를 얻어낸 일은 ‘위에 계신 보스’ 없이는 결국 있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더글라스는 늘 고백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운 전중에 간질을 일으킨 더글라스는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글라스는 어느 여름날, 폭우 가 쏟아져 내리는 퇴근길에 중심을 잃고 남의 집 울타리에 부딪치는 바람에 머리를 심하게 다쳐 병상에서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더글 라스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 줄 여인이 있었으면… …” 하고 바람을 지니고 있었는데… …. 장례식날, 마가렛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부 짖었습니다.
그런 충격과 슬픔의 와중에도 마가렛은 한 번도 성가대 연습 시간에 결근이나 늑장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몇해 전, 크리스마스 즈음에 부른 성가 “외!거룩하신 아기여”의 알토 부분의 솔로를 훌륭히 해낸 그녀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곡은 약 삼십 년 전, 마가렛이 중년 때 부른 곡이었는데 다시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오! 거룩하신 아기여, 오 거룩하신 아기여!” 바람 빠진 고무 풍선과도 같이 연약하고 떨리는 음성의 마가렛은, 지휘자의 불호령 속에도 기권하거나 양보함 없이 끝내 해내고 말았습니다. 할 수 있을 때 무엇이든지 한다는 그녀의 정신력과 참여의식이 부럽기까지 합니다. 언젠가 담석증 수술을 받은 마가렛이 병원 퇴원 후, 일주일 만에 차를 운전하여 교회 예배 에 나온 모습은 강인한 인간의 의지 속에 숨은 그녀의 티없는 믿음을 엿보게 했습니다.
어느 날, 나는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많은 양자를 데려다가 돌볼 수 있었습니까?” 그녀는 빙긋이 웃으며 대답하였습니다. “우리 애들이 모두 어렸을 때의 일이지요. 어느 날, 신문에 두 남자아이들의 사진 위에 이런 글이 있었어요! 당신의 가슴 속에 이 두 아이들을 품어 줄 빈 방이 있습니까?’ 라고요. 알고 보니 흘 어머니가 양육하다가 어머니가 범죄로 인해 감옥에 들어가야만 할 형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나 그 아이들이나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가족들과 상의해서 그 애들을 데려왔지요. 그 후론 계속해서 다른 애들도 돌보게 되었습니다.”
마가렛은 평생을 가슴속에 빈방을 열어두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그 방을 거쳐간 양자 양녀들 중에는 자수성가하여 큰 사업을 일으킨 이들도 있고, 회사원, 공장의 일꾼, 사회 지도자 등 많은 분 야에서 봉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 마약 딜러의 꾐에 빠져 16세의 어린 나이에 살해된 소녀도 있어, 우리 모두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하며 끝까지 절대 포기치 않으며, 모든 결과 앞에 승복하며, 과거에 연연해하거나 절대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그녀의 삶의 지침이었습니다.
여든을 바라보는 마가렛은 지금도 1년 내지, 2~3년 후의 스케줄대로 움직여 나갑니다. 그녀의 빽빽한 시간의 스케줄 속에서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현실에 충실하며 사는 모습을 봅니다. 성경을 하루 한 차 례씩 읽고 그날의 말씀을 묵상하며, 봄이 오면 꽃씨를 뿌려 새싹들을 이웃과 함께 나눕니다. 동네 아이들에게는 친구이자 엄한 호랑이 할머니이기도 합니다. 또한 예의 없고 철없는 어른들에게는 여지없이 큰소리로 야단을 칩니다.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눈시울을 붉히며 감격해 마지않습니다. 끊임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쓴잔들을 담담하게 마시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나는 얼마나 많은 순간을 쓴잔 앞에서 포기하고 살아왔던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쉽게 토라져 버리고,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신앙인으로서 … …. 내가 있어야만 하고, 감당해야 될 일들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또한 교회와 사회 단체, 국가의 쓴잔들을 외면하고 무관심으로 살아올 때가 너무나 많지 않았던가? 홈레스, 가난, 어린이 학대, 각종 차별, 범죄, 병원 등 사회구석구석에 자원봉사자가 필요하고 관심과 대언자가 필요할 때, 나는 나의 빈방을 열어두었던가?’
올해도 주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깊은 밤, 감람산 위에서 피와 땀으로 얼룩진 기도를 올리십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하늘을 향해 부르짖으셨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아버지의 뜻 이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순종하며 믿음으로 삶의 쓴잔들을 마셔온 마가렛이, 부활의 새벽에 제일 먼저 주님께 달려갈 것을 확신합니다. 이 사순절, 풍요로운 삶의 완성을 위해 내 앞에 놓여진 쓴잔 앞에 무릎 꿇고 겸허하게 두 손을 모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