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된 후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과거를 버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과거를 청소하여 버릴 것을 버리지 않으면, 자신의 예전의 습관과 취미, 행동, 버릇들이 변화된 오늘의 나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줍니다.
교회에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한 부인으로부터 상담을 요청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예수 믿기 전의 습관을 떠나지 못하고 부인에게 손찌검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나면 아이들 앞에서도 곧잘 손을 올리니, 아이들 부끄러워 살 수 없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인이 말하기를 시아버님이 술만 잡수시면, 시어머니를 손찌검하는 것을 시집살이하면서 몇 번이나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누구에게나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여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부인과 자녀 앞에선 형편없는 아버지이자 남편이다 보니, 부인과 아이들의 신앙생활에도 혼란을 가져다 주는 안타까운 예입니다.
저에게도 사모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과거의 습관들과 행동, 취미, 버릇들을 그대로 갖고 있는 것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었을 것들은 냄새나는 쓰레기더미를 방불케 할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사모가 된 지 수년이 지난 후에도, 십대 때에 가장 좋아하던 록 뮤직 가수인 엘비스 프레슬리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던 일입니다. 평소에 TV를 잘 안 보는 편이지만, TV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나온다고 하면 만사 제쳐놓고 TV 앞에 앉아 넋을 잃고 구경을 하였습니다. 아이들까지도 TV에 엘비스 프레슬리가 비치기라도 하면, “엄마! 빨리 오세요! 엘비스가 나와요” 하며 효도라도 하듯이 엄마를 불러대었습니다.
그를 좋아하는 이유를 따져보면 너무나 어린애 같은 유치한 것들이었습니다. 즉, 그의 잘생긴 얼굴과, “Love Me Tender”를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 마이크를 한 손으로 잡고 어깨에는 통기타를 짊어진 채 두 다리를 뼈없는 오징어처럼 후들후들 흔들어대는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십대의 향수 속에 젖는 희열을 즐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살아 생전 국제적인 바람둥이였으며, 마약 중독자로 자기 명대로 살지도 못했던 사람을 그렇게 좋아하다니 … … . 그가 남긴 것은 육적인 사랑을 호소하는 노래들과 초호화판 오토바이와 그레이스 맨션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열광적인 나와 같은 팬을 위해 남긴 것이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성을 듣기 원하고, 그의 모습을 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런 나에게 주님이 어느날 내 영혼 속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으며, 만나보기를 원하고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일은 굉장한 영적 도전이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내가 주님을 엘비스 프레슬리 이상으로 열일을 다 제쳐놓고 만나기를 원하며, 그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는가 하는 영혼의 깊은 뉘우침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죄인을 위해 몸 버려 피흘려 주신 주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영생을 허락하셨건만 … … . 저는 가슴이 아프도록 회개를 하며 주님의 피흘리신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이후, 엘비스 프레슬 리가 나오는 영화나 비디오는 더 이상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아이들 에게도 분명히 “엄마는 더 이상 엘비스 프레슬리의 팬이 아니야!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만이 진정한 나의 수퍼 스타임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 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 13 : 11).
사도 바울의 말씀은 과거의 것을 버리기를 주저하는 우리들에게 소망을 안겨주는 기쁜 소식입니다. 내가 세례받고 영적으로 어른이 되 었음에도, 과거의 모든 습관과 행동, 취미와 버릇들은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감하게 버려야 될 것을 버릴 때 우리의 삶은 더 이상 과거로부터 매임을 받지 않는 성결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될 것입니다.
중세시대 수도사들은 수도사가 되기 위한 일 년 동안의 시험 기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수도사가 되겠다고 작정한 사람들은 일 년 동안 세속 옷을 벽에 걸어 두었다가, 견딜 수 없으면 다시 세속으로 아무때고 나갈 수 있는 자유를 허락했다고 합니다. 우리도 예수 믿고 벗어놓은 세속 옷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우리 삶의 옷장에 걸어 두었을 땐 영적 삶에 걸림돌이 되는 것뿐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심령에 상처를 주는 일을 하게 됩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주느냐” (찬송가 185장)
주님의 수난과 부활을 앞두고 영적 순례의 길을 걸으며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의 눈이 열리기를 주님께 간구합니다. 그리고 내게서 버려야만 될 것을 버릴 수 있는 결단과 용기를 갖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버리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버릴 것을 버릴 때, 가까이 오시는 주님의 투명한 모습 속에, 부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