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살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라는 말을 흔히 합니다. 사실 부부간의 어려움이나 형제 자매간의 문제, 세상사의 여러 가지 얽히고 설킨 복잡한 문제들도 어느 날, 내 마음을 달리하고 보니 하루아침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들을 하게 됩니다.
어느 시어머니가 새며느리를 맞이하고 얼마 지난 후에 혼자 고민에 싸여 있음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새며느리는 가정살림엔 전혀 관심이나 경험이 없는 문외한이었고, 웃어른에 대한 예의도 전혀 갖출 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안에서야 어찌하든지 밖에 나가도 새며느리는 시어머니의 눈에 문젯거리였습니다. 견디다 못한 시 어머니는 며느리를 야단도 치고 버릇을 바로잡아 보고자 애를 썼으나 오히려 집안에 불화만 생길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시어머니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자꾸 죄를 짓는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분은 새며느리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접어두고 감사의 조건들을 찾아보고자 애쓰며, 그 목록을 적어 보았습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적을 만한 것을 발견치 못하였답니다.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고, 잘 맞지 않고, 싫은 것 외엔 없었으나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하나씩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였 습니다.
그 시어머니의 고백은, 만일 아들이 아직도 장가를 못 가서 노총각으로 혼자 살고 있다면 그 뒷바라지는 물론이요, 그 쓸쓸하고 안쓰러운 모습을 어찌 봐주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총각 때는 직장에 다녀오면 말 한마디 없이 제 방에 들어가 있던 아들이, 하루종일 무엇을 먹었고, 누구를 만났으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아내에게 말 하는 것을 귀동냥으로 들어, 아들의 하루 일과를 비로소 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집에 오면 맞아주는 아내를 보고 싱글벙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웃음을 갖게 해준 며느리에게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살림을 좀 못하고, 버릇이 좀 없어도 그 사랑하는 아들의 삶에 웃음과 행복을 제공해 주는 일을 어머니가 대신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그분의 결론이었습니다.
지혜로운 그 시어머니는 빨리 자신의 마음을 돌림으로 인하여 아들 내외의 행복은 물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더이상 범죄치 않게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하며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보니 사랑의 문이 열리 더군요” 하시며 평안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들이 마음먹기’에 따라 보는 각도와 색채, 감정이 다를 수 있고, 거기서 파장되는 결과 또한 삶에 엄청난 획을 긋게 됩니다. 순간순간 살얼음판을 딛듯이 ‘마음먹기’를 진지하고 성실하게 해야만이 행복과 평화를 유지하게 됩니다. 어떤 분은 가족과 남을 위해 열심히 평정된 삶을 잘 사시다가 어느 한순간에 이 ‘마음먹기’를 잘못하여 평생에 큰 오점을 남기어, 건강을 상하고 가정과
자신을 풍비박산으로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50~60 년대에 「슬픔이여 안녕」을 써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은 요근래 마약 복용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는데, 그는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나 자신을 파멸시킬 수 있 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여 그를 우상처럼 여겼던 그의 올드 팬들을 우울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자신을 파멸시킬 권리에 대하여 마음을 먹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어도 그녀의 똘똘 뭉친 마음을 풀
어줄 길이 없을까 기도해 봅니다.
양팔이 없는 젊은이가 목에 썰매를 매고 북극을 횡단하는 기사를 감명깊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육신이 멀쩡한 사람들도 차마 감행하기 어려운 일을, 이 젊은이는 할 수 있다고 ‘마음먹고’ 북극 횡단에 감히 도전하였습니다. 육신의 불구보다도 마음의 불구가 얼마나 인간을 부자유스럽게 얽매는지를 그는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앨버트 맥스라는 미군 병사는 한쪽 눈을 잃고 상의군인으로 제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어느 날, 우리 나라의 고아원과 버려진 노인들을 돌보는 양로원을 방문했다가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제대 때 받은 연금 중 최소한의 것만 자신의 생활비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소외당한 한국인들을 위해 사용하게 되었습니 다. 그는 얼마나 최소한의 생활을 했는지, 운동화조차도 기워 신어가면서 한평생 불우한 한국인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그의 진리를 향한 ‘마음먹기’는 그의 생애와 버려진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 접목시키는 일을 감당하였습니다.
우리들의 ‘마음먹기’는 가장 쉬운 것 같아도 가장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그 ‘마음먹기’ 에 따라 생명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고, 파멸을 향하여 달려갈 수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라는 말씀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봅니다.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보니 사랑의 문이 열리더군요” 라고 고백하는 어느 시어머니의 말을 생각하며, “세상살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습니다.”라는 말은 내 영혼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서는 올바른 마음먹기란 있을 수 없음을 일깨워 줍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난 죽어도 못해요!” 하는 분들은 그 일에 대해 우선 마음을 먹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사에서 마음만 먹으면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이끌어 들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