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 목사관 서신 (아름다움을 위하여, 다섯번째 이야기, 2001), 윤 완희

한 사람의 영혼 속에 피어나는 꿈과 이상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것 보다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것도 나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한 꿈이라면, 그 부귀영화의 꿈은 풀의 꽃과 같이 곧 사라져 버리거나, 그 말로가 추하게 끝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영혼과 영혼 속에 이어지는 인간의 본질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는, 늘 푸른 소나무와 같이 그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어도 시들거나 사라지지 않는 우리 모두의 귀중한 꿈이 됩니다.

1886년 당시에 벨(Alexander Graham Bell) 박사는 전화를 발명한 발명가일 뿐만 아니라 청각 장애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했습니다. 벨 박사의 부인 역시 청각 장애인이었기에 청각 장애인들을 향한 애정이 그 누구보다도 깊었습니다. 벨 박사는 처음 헬렌 켈러를 만난 후, 그녀의 아버지에게 개인 교수가 될 설리반 선생님을 소개시켰습니다. 일 년 후 3월 3일, 앤 설리빈(Miss Annie Suilivan) 선생님과 헬렌 켈러의 만남은 인류 역사에 극적인 꿈을 안겨주는 중대한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설리반 선생님은 21세의 처녀였으며, 헬렌은 여덟 살을 앞둔 나이였습니다. 설리반 선생님은 그녀의 입술의 움직임을 통하여, 암흑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 소녀의 영혼 속에 빛과 언어의 세계를 열어 주었으며, 들을 수 있는 열쇠를 찾게 하였습니다. 영혼의 암울과 적막 속에서, 신경질적이고 이기적이었으며 동정이나 사물에 대한 애정조차도 전혀 감지하지 못했던 어린 소녀의 영혼 속에 숨어 있는 무한한 세계를 향하여, 광부가 광맥을 찾아 쉼없이 곡괭이질을 멈추지 않는 것같이, 인내와 사랑으로 꿈을 키웠습니다. 헬렌 켈러는 처음으로 설리반 선생님의 손끝을 통해 말을 배운 후의 감동을 그녀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구약 민수기에 나오는 꽃이 피는 아론의 지팡이 처럼 나를 위해 이 세상을 꽃밭으로 만들어 주셨다.”

설리반 선생님의 신앙과 열정에 찬 꿈은 한 소녀의 영혼의 사슬을 자유롭게 풀어 주었고, 자유함을 얻은 소녀는 많은 불우한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안겨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1935년 조지아 주 알라바마에 두 소년이 이웃으로 자라고 있었습 니다. 한 흑인 소년은 침례교 목사님의 아들이었고, 한 백인 소년은 식품점 주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눈만 뜨면 같이 모여 장난감 총 싸움이며, 몸싸움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가 지도록 즐겁게 뛰어 놀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강제로 갈라져야만 할 시기가 왔습니다. 한 소년은 백인들만 들어가는 학교를 가야 되었고, 한 소년은 흑인들만 가는 학교에 다녀야 했습니다. 부모들도 이들이 더 이상 같이 놀 수 없다고 단언하였습니다. 흑인 소년이 백인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왜 우린 더이상 같이 놀 수 없다고 하지?”

“너는 흑인이고 나는 백인이기 때문이야! 나도 몰라,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

흑인 소년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자라나며 현실을 보기 시작하였습니다. 백인과 흑인은 같이 먹을 수 없고, 버스도 같이 탈 수 없었으며 시장도 같이 볼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도 예배를 함께 드릴 수 없었습니다.

어린 마틴 루터 킹 소년은 꿈을 꾸기 시작하였습니다.

“언젠가 백인과 흑인이 함께 어울려 평화롭게 형제애를 나누며 살날이 오지 않을까?”

그의 꿈에 수많은 사람들이 동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63년 8월 25일, 위싱턴에서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인종 차별의 암흑기에 미국을 향하여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가 저들의 피부 색깔로 평가되는 것이 아닌, 진정한 그들의 인품 속에 담긴 내용으로 평가될 날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꿈이 있습니 다. … … 자유의 종이 들과 산꼭대기, 시내 방방곡곡에 울려퍼지어 흑인과 백인,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개신교인이나 가톨릭 교인이나 다 같이 손과 손을 잡고 흑인 영가를 부르며 ‘하나님! 우리가 결국 자유 를 얻었습니다. 끝내 자유하고 말았습니다! 라고 외치며 언젠가 노래 할 것입니다.”

그는 1968년 4월 4일,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에서 저격당하여 39세의 나이로 육신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꿈은 살아 미국의 인 종차별주의를 철폐하고 사회 정의를 바로잡게 하였으며, 차별받는이들에 대한 책임을 일깨우는 일을 비폭력으로 해내고 말았습니다. 그의 꿈은 인종과 국가를 초월하여 지금도 세계 곳곳에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관학교를 졸업한 젊은 엘리트 장교가 경마와 술로 진 빛을 갚고 차 한 대를 사기 위해, 은행에 권총강도로 들어갔다가 잡힌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슬프게 했습니다. 또한 이민와서 살고 있는 뉴욕 교포들끼리 서로 같은 종류의 가게를 벌여놓고 해대는 1센트 세일 경쟁은 우리 모두의 꿈을 1센트로 전락시키고 말았습니다.

“빵은 있으나 이상이 없을 때, 그 빵은 이상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이상은 있으나 빵은 없을 때, 그 이상은 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예프투쟁코의 말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지지 않는 한, 우리는 미래를 향한 진정한 꿈과 이상을 실현하지 못할 것 입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것이며”(욜2: 28)

요엘 선지자의 말씀은 꿈이 없는 이 시대를 향하여 살아 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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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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