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녀들의 방학과 졸업으로 가정마다 희비가 엇갈리게 됩니다. 공부를 잘한 자녀들을 둔 부모님들은 이때쯤이면 자녀들의 상받는 모임에 초대되어 뿌듯한 마음으로 힘껏 박수를 치며 그 동안의 모든 시련들을 잊게 됩니다. 그러나 성적표 결과가 전년보다 못하거나 때로는 낙제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을 때에는 부모님들은 애를 태우게 됩니다.
우리 가정의 세 아이들도 일 년 동안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에 합당 한 성적표들을 받아 왔습니다. 새 목사관으로 이사오게 되어 아이들의 학교도 옮기게 되다 보니, 제 나름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많은 노력들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사히 학기를 넘긴 것이 고마웠습 니다. 그러나 작은아이들 둘은 꾸준히 향상한 반면, 올해 고등학교 2 학년인 큰아이가 전년보다 형편없이 떨어진 결과 앞에 아이보다도 부모인 우리 자신이 더 당황했습니다. 이유를 따지는 엄마에게 “저는 이 학교가 싫어요!” 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눈을 껌뻑이는 아이 앞에서 엄마로서의 부족함과 안타까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사려가 깊은 아이의 심중에 숨어있던 그 한마디가 메아리처럼 들려왔습니다.
한창 꽃을 피우며 자라나고 있는 나무를 어느 날 무조건 뽑아다가 다른 자리에 옮겨 심고, 왜 꽃이 피지 않고 열매가 없냐고 나무를 나무라는 미련한 정원사 꼴이 되고 만 제 자신의 처지가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작은 나무들이야 뿌리가 깊지 않은 상태이므로 옮겨 심은 대로 뿌리를 뻗어 나가지만, 다 자란 큰 나무가 새 환경 속에서 뿌리를 내리기란 그리 쉽지 않은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큰 아이는 한번도 새 학교에 관한 불평이나 어려움을 털어놓지 않은 채, 열심히 홀로 뿌 리내리기에 몸부림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감당하기 힘겨운 대 내외적인 봉사활동 속에 소외감과 외로움을 극복하려고 애쓰며, 늘 “엄마는 바쁜 사람이니까 귀찮게 해드리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모든 일에 잘하고 있다는 인사 치레를 했던 것입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엄마로서 이렇게 미련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의 성적표가 인생의 전부인 양 두 눈을 휘둥거리며 결과를 따지는 내 자신의 성적표는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채점해 보니, 이것은 누구 앞에도 내어놓을 수 없는 형편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내, 사모, 어머니, 며느리, 딸, 선교회 담당자로서 그 어느 역할도 제대로 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과 관계는 더 형편없는 것이었음을 고백하지 않 을 수 없습니다. 상을 타거나 등수에 들 만한 것이라곤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낙제투성이였습니다. 자기 스스로에 대해 절망하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나가 하나님께 통회하며 낙제투성이로 얼룩진 나의 성적표를 내어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러셨듯이 내 짐을 모두 내려놓고 주 안에서 새힘을 얻으라며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큰 아이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내 심령 처럼, 하나님도 내 인생의 모든 성적표를 들여다보시며 안쓰러워하심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내 삶이 승리할 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기 뻐하십니다. 그러나 내 삶이 형편없는 하향길에서 낙제를 하게 될 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도 낙제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그분의 모든 자녀들이 이 땅에서의 삶에 상 받기를 원하시고 승리하기를 원하시지만, 인생길에 낙오된 모든 자녀들을 향하여는 안타깝게 여기시며 애쓰십니다.
우리에겐 다행히도 내일이라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의 내일이었음을 생각할 때, 오늘 이 순간을 빨리 재정비하여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세월이 흘러 삶의 고리들에 표시된 성적표의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어떤 이유이든지 내리막길에 서 본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습 니다. 실패 없는 성공은 옳은 성공이 아님을 상기하며, 제련소의 뜨거운 불속을 오가면서 망치로 이리저리 두들겨 맞으며, 모양을 갖추어 가는 쟁기를 생각해 봅니다. 일찍이 하나님 앞에서 선교사의 꿈을 다 부지게 펴고 있는 큰아이가 하나님 안에서 깊은 믿음의 뿌리를 내리기를 먼저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서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내일이라는 오늘을 주신 좋으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도와주신다는 언약 위에 굳게 매달려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