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목사관 서신 (아름다움을 위하여, 열두번째 이야기, 2001), 윤 완희

아버지!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언젠가는 아버지께 사죄와 감사의 편지를 올리겠노라고 생각하면서도 미뤄온 지가 벌써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세월을 뒤돌아 보면서 지금도 아버지와의 시간들이 엊그제 일들처럼 생생합니다. 어느 여름날 밤이었던 것 같아요 요란한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와 풀벌레 소리들이 저마다의 목청을 돋우고 있는 밤에 어린 저는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엎혀 있었지요. 아버지는 몸을 좌우로 천천히 흔들면서 콧노래를 부르셨는데 그것이 어떤 노래였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버지는 먼 밤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면서 별자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그 때 그 넓고 광활한 밤하늘의 초롱초롱한 별들을 올려다보면서 왠지 두렵고 무서워 아버지의 목을 더 힘껏 껴안았었지요. 아버지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고 편안했는지… . 지금도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노라면, 그 밤의 아버지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집니다.

아버지 기억하세요? 흔들리는 앞니를 아파서 빼지도 못하고 그냥 너두지도 못하여 엄살을 부리며 온 집안을 소란하게 하던 날 있잖아요? 언니들이 흔들리는 저의 앞니를 빼주겠노라며 명주실을 들고 설치는 것을 보면서 문 뒤로 숨어 있는 저의 이름을 부르셨지요. “어디 보자! 정말 흔들리는지, 아닌지? 하시기에 저는 아버지 앞에서 “아-“하고 입을 벌렸죠. 순간, 어느새 아버지의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 뽑혀진 저의 앞니를 보았을 때의 처참함과 놀라움! 그땐 정말 허망했어요. 저는 설마 아버지가 그럴 줄 몰랐었던 말이에요. 하지만, 곧 거울 속으로 보이는 빠진 잇몸 사이로 보이는 흰 영구치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버지! 저는 지금도 아버지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셨는지 알고 있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소풍가기 전날이었지요. 아버지는 저를 중앙 시장 안에서 제일 과자를 잘 만드는 집에 데리고 가셔서 제가 원하는 것 이상으로 잔뜩 사주셨어요.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것은 선생님 드리고, 저것은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라.” 하시면서 가방이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과자가게를 나섰지요? 그때 제 발걸음은 가볍다 못해 하늘로 둥둥 떠가는 것 같았어요. 골목길을 들어서며 동네 아이들 앞에서 뻐기는 저의 모습을 보고 잔잔히 미소지으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어느 비오던 날이었지요. 아침에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면서 천둥 번개가 치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끝날 시간은 다 되어 가고 친구들의 부모님들은 우산들을 갖고 웅성 웅성 교실 밖에 모여 있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집에 갈 일이 걱정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교실 창문 밖으로 고개 하나가 보였습니다. 유난히 키가 크신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겠어요? 그때 얼마나 안심이 되고 기뻤던지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개천 물이 넘쳐나고 도로의 파여진 곳에 물난리가 나는 소동이 있어도 저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어요. 아버지의 손만 꼭 잡으면 될 것 같았거든요.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그토록 사랑하신 것같이 저도 아버지를 사랑했어요. 어느 여름방학 때, 아버지는 저를 데리고 삼각산에 기도하러 가시게 되었지요? 일주일 예정이었던가요? 저는 언니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삼각산 집회에 따라갔지요.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산중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지요. 천막집회 장소의 가마니 위에 앉아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저는 잠을 얼마나 맛있게 잘 잤는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그 다음 날로 집에 가셔야만 했지요? 이미 일주일을 머물 수 있는 건강이 아버지에게 없으셨던 거예요. 아버지의 헉헉 대시는 숨소리 속에 저는 불안하고 우울해지기 시작했어요. 왠지 아버지가 영영 어디론가 가시고 말 것 같은 두려움이었어요. 그 두려움은 날이면 날마다 가까워지더니 어느 초겨울 날 새벽, 아버지는 한 마디 말씀도 없이 영원히 가시고 말았지요. 그 날 아침, 저는 황당하고 처절한 기분이었어요.

아버지! 아버지가 어머니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저희들은 잘 알고 있어요. 또한, 병세가 악화되어 당신 몸조차 가누기 힘든 가운데서도 길거리의 거지들을 모아다가 밥을 해먹이고 당신의 옷가지를 나눠 주시던 모습을 저는 보았어요. 그리고 어느 추운 겨울날 밤, 저와 동갑내기인 어느 거지 아이를 데려다가 직접 씻기시고 제가 아끼는 골덴바지를 입히시던 모습을·· … 저는 그때 너무 속상했었지요. 그 아이가 몇 달 동안 우리집에 있는 동안 저는 그 아이를 너무 미워했던 것 용서하셔요. 아버지! 아버지의 11년 동안의 사랑은 하늘 아버지의 영원한 사랑을 볼 수 있게 하고 느낄 수 있는 문을 열어주셨어요. 아버 지께서 붙여주신 ‘물렁이’ 라는 별명처럼, 의지가 약하고 울보인 제가 하늘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이 얼마나 다행이며 축복인지요.

아버지! 감사드려요. 그동안 아버지를 잊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뿐이었습니다. 아버지, 지금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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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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