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후, 모든 교회의 행사들이 끝난 후에, 남편과 나는 양로원을 향해 부지런히 달리기 시작하였다.
매월 한달에 한번있는 성만찬 주일의 성찬을 양로원에 계신 성도님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였다. 봄별이 많이 길어졌다고 하지만, 저녁 7시가 넘어가니 사방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우리는 주일 제단에 들어왔던 꽃을 안고, 임권사님이 계시는 양로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었다. 이미 저녁식사가 끝난 듯이, 다이닝 룸은 어느듯 한산해져 있었고, 각 방에서 울려나오는 T.V의 소음 만이 낭하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방번호 12라고 쓰여져 있는 문 앞에 서서 잠시 안을 들여다 보니, 산소탱크를 연결한채 뼈만 앙 상해 보이는 백인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반짝이며 밖의 인기척을 향해 호기심있게 내다보고 계셨다. 그리고, 그옆에 눈에 익은 동양 할머니가 휠체어에 멍하니 앉아계시다가, 눈을 맞추며 초점을 잡기 시작하였다. “권사님! 접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남편의 인사에 임권사님은 기억을 되찾는 듯이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셨다. “…아이구! 목사님이시군요!” 그녀는 반가움에 성한 한쪽 팔을 연신 들어올리며, 남편 손을 마주 잡으셨다.
“권사님! 오늘은 성만찬 주일이잖아요? 그래서 여기 성찬을 갖고 왔습니다!” “… 목사님! 난 교회도 못가는데…” 권사님은 감사와 놀라움에 찬 감격으로 연신 눈물을 닦아내시며, 고마움을 표현하셨다. 성찬을 준비하시는 목사님을 본 옆침대의 노인이 그 소란한 텔레비젼을 꺼주면서, “하나님의 축복이 당신들에게…!” 하면서 두 손을 합장하셨다. “권사님! .·.이것은 우리를 위해 주신 그리스도의 몸과, 우리를 위해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입니 다….” “..아…멘” 하시는 권사님은 목이 메이시어 한참을 진정하신 후에야 성찬을 드시었다. 한 조각의 작은 빵과 포도주를 마시는 권사님의 영혼은 참으로 겸손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성찬 후의 감사 기도가 끝난 후에도, 권사님은 “이 쓸데없고 보잘 것 없는 이를 찾아와주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하시며, 연신 말을 잇질 못하셨다. “오늘 예배에 우리 아들과 며느리도 나왔죠?” “그럼요! 아주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시죠!” 권사님은 60이 다 되어 가는 아들 내외의 신앙생활이 가장 먼저 염려되듯이, 확인하시며 안심하셨다. ” 그럼요! 우리 애는 뭐든지 하면, 뼈가 부서지도록 하는 애죠…” 권사님은 만족한 미소 속에 고개를 끄떡이셨다. 우리는 권사님의 권유에, 침대에 걸쳐 앉아 주변을 찬찬히 살피게 되었다. 가만히 보니, 권사님의 침대 앞에는 빙고께임에 일등하여 받은 수십장의 상장들이 온통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옛날, 경성여고 졸업생다운 실력을, 양로원 생활가운데서도 유감없이 발휘하는 권사님의 지나간 생애를, 누가 알고 관심을 가지려 만은, 이제 겨우 몸을 의지하고 앉아계신 휠체어가 권사님의 유일한 발길이 되어, 양로원의 이곳 저곳을 외롭게 누빌 뿐이었다.
우리는 권사님의 침대에 걸쳐 앉아 잠시동안의 사랑을 나누며, 양로원의 삶에 대해 대화를 하게되었다.
권사님은 옆침대를 가르키며, 96세된 이웃과 생활하기가 좀 불편한 것 외에는 별 지장없이 자족하며 나날을 보내고 계시다고 하였다. 그리고, 권사님은 찬찬히 휠체어를 몰아, 옷장 설합을 여시더니 “대접 할 것이 여기는 별로 없어요!”하시며, 잘 보관해 두었던 캔디를 꺼내어, 우리 부부의 손안에 한알씩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일어서는 우리에게, 권사님은 배웅하겠노라며 현관까지 나오시기를 원하였다. 남편이 조심스레이 휠체어를 밀어주어, 현관 문 앞까지 나오자, 권사님은 감사와 아쉬운 눈초리로 우리 부부의 손을 잡으셨다.
“아이 러브 유! 갓 블레스 유!” 성한 손을 입에 대시며, 블루우 키스를 연방 보내시는 권사님을 뒤로하면 서, 인생의 황혼이 우리에게도 달려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이 땅에서 누리던 영화와 부귀, 명예는 다 어디로 사라지고, 이제 홀로 이렇게 남아 있는가. 잠시 인생무상의 서글픈 마음을 달래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노라니, 누군가가 권사님의 휠체어 뒤에 서서 함께 손을 흔들고 계셨다. 아! 눈에 익은 모습, 그 모습 어디서 보았던가! 그 인자한 모습..!! 조금전, 당신의 몸과 피를 아낌없이 나누셨던 그 분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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