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하는 날” – 목사관 서신 (분꽃 이야기, 두번째)

지난 토요일 오전에는 막내아들의 이발하는 날이었습니다. 평소에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지만, 때로는 이발소에 가기를 싫어하는 아이 때문에 가끔은 화장실에 임시 이발소를 차리고 가위와 빗 등의 각 종 이발 도구를 갖춘 채, 좁은 공간에서 아이와 씨름을 해야만 했습니다.

아이는 제 머리 모양이야 어찌되든,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엄마 앞에 머리를 맡기는 것이 좋은 듯했습니다. 아이는 목에 큰 나일론 보자기를 슈퍼맨처럼 두르고, 가위가 움직일 때마다 제 귀가 잘린다고 엄살을 부리는 시늉을 하면서도, 엄마가 자른 머리 모양이 이발소에 가서 자르는 것보다 좋다고 아양을 떱니다.

아이는 버섯모양의 머리를 원합니다. 그러나 저는 일언지하에 거절 합니다.

“얘! 그것은 못 쓰겠더라! 머리꼭지에 바가지 엎어놓은 것 같아, 모양이 틀렸어! 엄마가 멋있는 모양으로 만들어 줄게!”

조심스럽게 이발 기계를 움직이지만, 여기저기 장마 후에 페어진 도로와 같이 겉잡을 수 없이 머리 모양이 복잡해집니다. 진땀이 흐릅니다. 아이는 목이 따갑다고 벅벅 긁으며 의자 위에서 안절부절못합니다. 우리들의 목소리는 좁은 공간에서 점점 커집니다. 머리카락이 온몸과 화장실 바닥, 세면대 위로 풀풀 날립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도 머리 모양이 형편없이 제멋대로였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연마(?)했건만, 아직도 아마추어를 면할 수 없습니다.

“애! 제발 이 다음엔 이발소에 좀 가자!”

깎아놓은 모양이 영 맘에 들지 않아, 아이의 눈치를 보며 어쭙잖은 변명을 합니다. 아이는 거울을 흘낏 들여다보고는 만족한 표정으로 몸에 붙은 머리카락들을 사정없이 털어냅니다.

메마른 솔잎처럼 바닥에 깔린 머리카락을 쓸어내면서 문득 시골 어느 가을날이 생각났습니다. 가끔 지나가는 이발사 아저씨가 “머리깎소! 머리깎소!”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면, 마당에서 콩을 털고 계시던 아버지가 마음씨 좋아 보이는 이발사 아저씨를 부르십니다.

어느 순간에 우리 집 처마 밑은 이발소가 되어, 빨래판을 얹어 놓은 양동이 위에 하얀 보자기를 두르고 앉아 계신 아버지를 보게 됩니다. 이발사 아저씨가 얇고도 뾰족한 가위로 썩썩 아버지의 머리를 자르면, 뒹구는 가랑잎과 함께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가을바람에 흩어져 버립니다. 곧 긴 면도날이 가죽 위에 갈아진 후, 거품이 가득한 아버지의 얼굴 위에서 번쩍일 때면, 행여나 이버지의 얼굴이 다치지 않을까 숨을 죽이며 들여다봅니다. 그러나 아버지와 이발사 아저씨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잠시도 쉬지 않고 말씀을 나누십니다. 그리곤 금방 말끔하게 이발을 끝낸 아버지가 손거울로 앞뒤를 비쳐 보십니다. 손거울에는 드높은 가을하늘이 가득 담겨집니다. 아버지는 곁에 있던 나에게 씩 웃어 보이시며, 수줍은 음성으로 어머니를 부르십니다. 시골 마당의 환하게 열려진 부엌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는 앞치마에 손을 닦으시며 나오시다가, 말끔하게 단장된 아버지를 보시고는, 맑은 미소를 짓고는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 버리십니다.

아버지의 손에는 앞마당에서 금방 딴 붉은 사과가 들려졌다가 어느 새 이발사 아저씨 손에 들려집니다. 이발사 아저씨는 모든 이발 도구를 순식간에 가방에 집어넣고, 누렇게 익어 흔들거리는 옥수수 밭길을 지나시며 “머리깎소!”라는 소리도 잊은 채, 단맛의 사과를 한입에 성큼 깨물며 가을의 정취를 맛보십니다. 포마드 냄새가 풀풀 나는 아저씨의 머리 위에는 한 떼의 고추잠자리들이 날개를 번뜩이며 따라갑니다.

가을, 울긋불긋한 단풍이 익어가듯, 지난날의 추억들이 과수원의 열매처럼 열리는 계절입니다. 막내의 이발하는 날, 40여 년의 세월의 망각 속에 묶여있던, 그 날이 불현듯 살아나는 것은 가을만의 신비인 것 같습니다.

© 윤 완희, 2001

Picture a mother who is haircutting her youngest little son in the bat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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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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