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의 모자” – 목사관 서신 (분꽃 이야기, 세번째)

저는 많은 모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어울리든 어울리지 않든 환경에 따라 바꿔 써야만 될 모자들입니다. 한때 의상 디자이너의 삶을 살았었기에, 어느 것이 잘 어울리고 어느 것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론으로, 실제로 배워왔었습니다. 그러나 사모가 된 후, 선택의 여지없이 눌러써야만 되는 그 많은 모자들은 곤욕스럽기 한이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실크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투구를 쓰고 다니는가 싶더니, 금방 청소부의 모자를 쓰고, 어느새 전화 교환원의 모자를 쓰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에 요리사의 모자를 눌러쓰고 있음을 … …. 그것은 처음에는 고통이며 수모이며 자존심의 깊은 상처였습니다. 나는 적어도 이런 스타일의 모자만이 적격이라고 하여 평생을 쓰고 다니며 스스로 멋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날 갑자기 가장 좋아하며 즐겨하던 모자를 빼앗긴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내 삶의 디자이너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안과 밖을 바꿔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분은 큰 가위로 나의 삶을 다듬으시며 재단하시고 새롭게 박음질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모자를 내 삶에 씌워 주셨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사모들에게만 주신 특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겐 필요치 않아요!” 라고 외마디 비명을 지르듯 철저하게 거부하였습니다. 멋쟁이이신 주님은 내가 멋지게 살기를 원하실에 나의 인간적인 항복이 끝날 때까지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끝내 항복을 하고 나니 비로소 세상 사는 멋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이민 교회에서 사모의 역할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운전수, 베이비 시터, 청소부, 상담자, 접대자, 편집자, 전화 교환수, 요리사, 성경교사, 위로자 등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기회를 사모에게 허락하셨고 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곳에는 나태가 있을 수 없고 게으름이 둥지를 틀고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시간만 나면 전화기를 돌려서 위로가 필요한 이를 찾아주어야 하고, 편지를 써야 하고, 자신의 영성을 위해 씨름을 해야 합니다. 때로는 힘에 겨웁고 외롭고 피곤하고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결과들로 인해 낙망 속에 모든 것을 다 팽개쳐 버리고픈 심정에 끙끙 앓아눕기도 합니다.

그러나 팔삭둥이 같은 나를 택하사 이 모든 일들을 부여해 주신 하나님께서 그분을 향한 전폭적인 신뢰 속에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심을 체험함에 어찌 감사 감격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과거엔 하나님께 내 자신의 못난 인간됨을 고백할 줄 몰랐었습니다. 다만 스스로의 노력과 수고로 그 많은 모자들을 바꿔 쓰려 하니, 영 힘이 들고 피곤하고 뭔가 잘 맞아 주지 않았습니다. 일을 해놓고 보면 돌아오는 것은 짜증과 원망의 소리뿐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나타난 결과가 좀 부족하고 맘에 흡족하지 않아도 감사 함으로 임하자, 삶의 색채가 훨씬 더 밝아졌습니다.

그 날은 주님이 손수 내게 찾아오시어 자신의 옷을 입히신 날 이었습니다. 머리엔 핏방울진 가시관을 쓰신 채, 눈물과 피곤함과 투정과 외로움과 부족함을 모두 안으시고, 인자한 미소로 그 못자국이 난 두 손으로 나의 등을 자꾸 쓸어 주셨습니다. 저는 조용히 목멘음성 으로 그분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여! 나를 구하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 후 내게 어떤 모자가 씌워지든 주님이 쓰신 가시관을 바라보며 부끄러워 얼굴 붉히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능치 못함이 없음을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삶의 옷장에 진열되어 있는 수많은 ‘사모의 모자’ 를 눌러 쓰며, 이토록 많은 경험과 체험을 안고 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투정이 아닌, 사랑의 윙크를 보내게 됩니다.

© 윤 완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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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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