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인 번호 3597” – 목사관 서신 (분꽃 이야기, 여덟번째) 2001, 윤 완희

세계 최장수 정치 복역수인 김 선명 씨가 43년 10개월 만에, 광복 50 주년 특사로 출옥했다는 서울발 뉴스가 1995년 8월 20일자 뉴욕타임 지에 대서 특필되었습니다. 그의 기구한 삶의 발단은 일본이 망한 후, 어지러워진 나라의 운명 속에 공산당만이 혼란에 빠져 있는 민족을 구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전쟁 중엔 인민군에 가담하여 싸우다가, 1951년 10월 15일에 유엔군에 의하여 포로가 되었습 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의 빙점 속에 갇히어 문명과 등진 채 살아온 것입니다.

그가 감옥 속에 있는 세월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여동생이 국군에 의해 처형되었고, 그의 눈앞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지닌 동료들이 남한으로 전향치 않는다는 이유로 갖가지 고문으로 죽어갔습니다. 김선명 씨는 여러 번의 혹독한 고문, 회유 속에서 공산주의 사상을 버리면 자유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고 주어졌음에도 거절하고, 44년이라는 부동의 세월 속에 고집스레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로서 이 땅에 공산주의 사회가 이루어 지면 인민이 함께 행복하고 동등한 삶을 살 날이 올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가족들과도 격리되어 면회조차 거절당하였습니다. 어언 70세가 된 김선명 씨는 90세가 된 노모가 아직도 살아있으나 출감하던 날, 그는 선뜻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러 갈 수 없었습니다. 이미 20여 년 전에 법적으로 사망이 된 아들이 살아서 나타났을 때 받을 충격을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머니와 아버지, 여동생과 가족들을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목이 메임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열려진 감옥 문을 나서는 김선명 씨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처음 보는 플라스틱 병, 전화, 텔레비전, 수세식 화장실, 빌딩숲, 하이웨이, 차량의 물결 등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세계가 푸른 하늘 아래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속으로 계속 다짐하였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날 감동시키지 못하지! 저 부요 함 속에 지금도 신음하고 있는 인민들이 있을 거야! 그는 지금도 신봉하고 있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슴에 다지며, 자본주의 사회 속으로 자유의 발길을 한 발자국씩 옮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의 출감을 맞이하러 나오신 김석현 할아버지의 말씀이었습니다. 김 선명 씨와 함께 32년 동안을 사상범으로 감옥에 있다가 1990년도에 먼저 출감한, 올해 82세 된 김석현 할아버지는 기자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김선명 씨에게 자본주의가 결코 다 나쁜 것만은 아님을 알려줄 것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한 사실이었습니다.

영양실조와 운동 부족으로 허리가 구부러지고 눈병조차 치료받지못하여, 시력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연약하고 순전해 보이는 한 사람의 비극적인 삶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하여 철저하게 비신앙을 외치던 공산주의자들, 그들이 한 사람을 신격화시켜 수백, 수천만의 선량한 사람을 노예화하고 무고한 생명들을 빼앗아간 사실의 실체를 김선명 씨가 깨닫는 날, 그의 허물어지는 모습을 상상케 됩니다. 그는 사상에 속아 자신의 귀중한 삶을 산화해버리고, 사람 노릇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지옥과 같은 환경 속에서 고난의 세월을 보냈던 것입니다.

김선명 씨는 공산주의 사상의 노예가 되어 살아왔지만, 우리의 가족과 이웃 속에도 그와 같은 사상의 노예, 마약의 노예, 술의 노예, 도박의 노예, 세상의 노예, 집의 노예, 돈의 노예, 과거의 노예가 되어 그 아까운 세월을 탕진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매이기 시작할 때부터, 그의 삶은 성장하지 못하고 얼어붙기 시작합니다. 비록 감옥에 갇혀 죄수 번호를 가슴에 달고 있지는 않아도, 감옥과 같은 부자유함과 얽매임 속에서 온전한 인간 관계와 하나님과의 바른 영적 삶을 영위할 수 없게 됩니다.

어느 분이 남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남편 외에는 아무 곳에도 눈을 돌리거나 신경조차도 쓰지 않다가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가는 것조차도 남편에게 미안하고 두려워했으나, 주님을 알고 보니 과거에 자신이 사랑한 남편은 육신적인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주님을 알고 보니 나와 남편의 생의 주관자는 나도 아니며, 남편도 아닌 하나님임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리면서, 남편과 그의 영혼이 영생에 이르도록 이전보다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생의 길에 진리와 생명이신 주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이 땅에 아무리 고상한 진리가 있고 사상이 있어도 그 사상과 진리는 결국 사람을 이용하게 되고 속박하여 노예화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 : 31~32).

이 말씀은 오늘도 무엇인가에 매여 속박되어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님이 주시는 말씀입니다.

수인 번호 3597, 세계 최장수 정치 복역수라는 영광스럽지 못한 영광을 누리게 된 김 선명 씨의 기사를 읽으며, “한 사람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살았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존 러스키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가 일찍이 주님을 만났더라면 그의 인생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후회없는 삶을 살았을까를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옛 날 옛적에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도망가며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 인가요? 하면서 반항하는 가인에게, 이마에 표적을 주시어 아무도 그를 상치 못하도록 보호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김 선명 씨의 남은 여생에 어떤 표적을 주실 것인가를 기대하며 가만히 주님께 귀기울여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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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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