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뱅크의 사거리는 언제나 분주합니다. 여느 때와 같이 겨우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이십오 전짜리 동전을 찾아 미터기에 집어넣는데, 길 건너 한 쌍의 누추한 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이가 아흔은 족히 들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초라한 행색으로 바람 부는 사거리에 서서 지나가는 차를 멈춰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의 몇 발자국 뒤에 떨어져서 있는 할머니가 몹시 숨이 찬 듯이 헉헉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서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옷자락을 움켜잡듯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도움이 필요하셔요?”
그의 안타까운 눈매가 몹시도 절박해 보였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으나 금방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몇 번씩이고 배에 힘을 주고 같은 말을 반복하였습니다.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 여기서 약 10분 거리인데 갈 수가 없습니 다: 거센 바람이 재촉이라도 하듯이 할아버지의 겉옷자락을 잡아 당기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순찰경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분들이 도움이 필요하군요! 집에 가시기 원하는데, 차가 없군요! “택시를 부를까요?”
경찰이 할아버지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택시비가 없어요!” “그러면,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셔요! 제가 잠시 은행에 다녀오겠습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음을 알았습니 다. 노부부의 얼굴에 안도감이 엿보였습니다. 경찰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습니다. 저는 급하게 은행에서 볼일을 마친 후, 부부가 기다리고 있는 바람 거센 길모퉁이로 걸어갔습니다. 그들 노부부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차가 길 건너편에 있는데 같이 길을 건널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들은 고개를 흔들었습 니다. “걸을 수가 없어요!” 할아버지의 기운이 쇠잔한 음성이었습니다. “그럼, 이 자리에 그대로 서 계세요! 제가 차를 갖고 오겠습니다.” 견고한 시티뱅크의 빌딩 모퉁이에 자신을 돌보기조차 구차스러워 보이는 노부부! 그들은 금방이라도 서고 말 것 같은 배터리가 다 된 시계의 분침과도 같았습니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며, 차에 오르는 할머니가 행여나 다치지 않을까 조심스런 눈빛으로 나와 할머니를 번갈아 보셨습니다. 할머니의 낡고 헌 회색 드레스가 정오의 햇살을 받아 검은 때의 윤기로 번들거렸습니다. 할머니는 한 발 한 발을 내디딜 때 마다 마치 집채가 움직이듯 무거운 몸을 힘겹고 조심스럽게 움직이셨습니다. 그녀의 굳은 허리와 다리는 필사적으로 지팡이에 의지한 채, 겨우 차의 뒷좌석에 실려졌습니다. 신음소리가 그녀의 수건으로 막은 입을 통하여 들려왔습니다. “두 분이 몸도 편치 않으신데, 어떻게 외출을 하셨습니까?””은행에 처리해야만 할 일들이 있었어요.” “자녀들 이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나는 그들이 도시를 미처 빠져나가지 못 한 도시에 남은 자들 중의 하나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뉴욕은 막 이민 온 사람들이 가장 쉽게 직업을 찾을 수 있고, 그 나름대로 이민의 뿌리를 내리기가 쉽고 편리하여 누구든지 뉴욕의 품에 안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교통이 편리한 곳을 중심으로 각 지역마다 피부 색갈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기 때문에 색다른 문화가 형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랜 동안을 뉴욕에서 자리 잡고 살아가던 백인 이민자의 후손들은 변해가는 환경과 이질 문화, 인구의 팽창으로 인한 번잡함과 범죄, 세금의 폭등에 견디지 못하고 도시를 빠져나갑니다. 그들은 한가한 교외나 날씨가 따뜻한 플로리다로 이주해 나가고, 뉴욕은 언제나 새로 이민온 사람들의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뉴욕 사람들은 모두 바쁩니다. 어쩌다가 차 안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그들 속에서 여유를 찾아보기란 정말 어렵습 니다. 안면이 있는 사람끼리 부딪치기라도 하면, 첫마디가 “나 지금 바 빠 나중에 보자구!” 하며, 쏜살같이 군중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모두가 생활 안정이라는 줄을 삶의 정상에 매어두고, 곡예를 하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곡예사에겐 아무와도 관계의 성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바쁜 사람들과 피곤한 사람들이 아니면, 역시 뉴욕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뉴욕에선 밤이든 대낮이든 아무도 거리를 어슬렁거리거나 한가하게 구경삼아 걷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홈레스 아니면 관광객들입니다.
그러나 그 바쁘고 피곤한 무리 속에 끼어 있지 않은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가 싫으면서도 도시를 떠나본 일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이해하던 오랜 이웃들은 하나둘 떠나가 버렸습니다. 새로 이사온 젊은이들은 새벽별을 보고 나갔다가 초저녁별을 보고 들어 옵니다. 주말엔 얼굴을 보겠거니 기대하지만, 주말엔 여행을 떠나가 거나 밀린 가정일과 쇼핑을 가느라고 얼굴을 볼 시간이 없습니다. 예전엔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돌보며 아껴주던 이웃들은 너무도 먼곳에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도시 속에 마치도 잊혀진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민 온 민족과 민족끼리, 피부가 같은 사람들끼리, 끼리끼리 모여들고, 끼리끼리 새 문화를 쌓아 가고 있는 데 … ….. 그들은 얼마나 많은 날들을 새 이웃들을 향하여 수화기를 돌렸겠습니까?
“여보세요! 새로 오신 이웃이여! 당신이 살고 계신 그 집은 하루에도 몇 번씩 드나들며 서로의 안녕을 묻고 물으며 지내던 내 과거의 이웃이 살던 집이지요! 뒷마당에 봄이면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노란색의 개나리는 40여 년 전 젊었던 이웃 부인이 첫아이 낳고 심은 것이라오. 지난 여름, 당신 집 앞마당에 잘라낸 도토리나무는 그의 할아버지가 심었던 것이라오. 우리는 여름이면 그 도토리나무 그늘에서 바비큐 파티를 즐기며 행복한 이웃과의 정을 나누었었죠. 그런데 당신이 이사온 후 둘러친 쇠망의 울타리 때문인지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오! 내가 당신을 안다는 것은 당신은 늘 바쁘고 피곤해 보이는 것뿐이지요. 지난 여름 내내 새로 마련한 당신의 야외 수영장에서 단 한번도 당신들의 웃음소리나 당신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였음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오. 엊저녁도 행여나 당신의 얼굴을 볼까 하여 밤늦도록 창가에 앉아 당신을 기다렸었소. 그러나 자동차 소리와 함께 바쁘게 문을 닫고 돌아서는 당신의 뒷모습만 보았을 뿐이라오.”
그들은 오늘도 새 이웃들을 향하여 가만히 수화기를 들고 귀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혼자서 큰 집을 지키거나, 두 부부만이 집에 사는 예가 허다합니다. 또한, 양로원에 들어가 계신 노인들은 친척이나 자녀 들에 의하여, 빈집을 관리만 하고 있는 예도 상당수가 있습니다. 저녁 이면 자동으로 들어오는 전기 조정 장치에 의하여 현관과 방에 불이 들어오고, 모든 우편물은 우체국의 사서함을 통하여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잔디깎기는 집 관리 회사에 의하여 깨끗이 정리가 됩니다. 바 쁜 이민자들은 때로는 이웃에 누가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르고 지나치는 수가 많습니다. 불행한 사실은 혼자 집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노인들이 혼자서 죽음을 맞거나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 태를 맞게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노인들은 위급한 상황에 대비하여 알람장치를 집이나 몸의 한 곳에 비치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노인들은 지역마다 그룹을 짜서, 노인들의 행사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을 매일 전화로 점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으면 그들의 가족이나 친척, 의료 상담자들에게 신속한 연락을 취합니다. 그들의 하루의 농담 가운데는 누가 언제 ‘만기 (Expire)’를 기다리고 있다거나 ‘만기가 되었음’을 지칭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나의 예견대로, 그들 부부는 피부가 다른 이웃들 틈에 끼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쇠망의 울타리를 친 이웃의 드라이브 웨이에 젊은 청년이 무엇인가를 하다가 차에서 힘겹게 내리는 노인들을 못 본 척하며 사라져 버렸습니다. 노부부는 한 걸음이면 걸어올라 갈 계단을 거의 십여 분이 걸려서야 겨우 올라서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들은 영화의 슬로모션 필름이 되어, 떠나지 못하고 기다리고 서 있는 나에게 손을 찬찬히 흔들었습니다. 나는 불현듯 지갑을 열어 할머니의 굳은 손에 명함을 쥐어드렸습니다.
“할머니, 어느 때든 차가 필요하시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를 주셔요.”
그의 숨이 차오르는 얼굴에 잠시 평화가 솟는 듯했습니다.
조금 전, 노부부가 서 있던 시티뱅크의 빌딩 모서리엔 바람에 불려 온 구겨진 신문이 맴돌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시간의 바람결에 실리어 이 도시를 빠져나갈 것입니다. 아니, 어느 날인가 눈물이 치솟도록 외롭고 소외된 도시의 남은 자 중의 하나가 되어, 나직이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려고 여기 서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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