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인 친구” (목사관 서신, 도시에 남은 사람들, 열번째 이야기) 1992, 윤 완희

올해 92세인 미세스 루이스 웨기가 자동차를 팔게 되었습니다.

연세에 비하여, 2년은 젊어 보이는 그녀는 현재까지도 변호사 사 무실에서, 파트 타임으로 서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작은 키에 곱게 차린 모습은 어느 젊은이 못지않게 언제나 깔끔한 성품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분홍색 옷과 청색 옷을 즐겨 입는 그녀는 한번도 액세서 리를 빠뜨리지 않고 곁들였습니다. 그녀가 걸고 다니는 목걸이와 귀 걸이 등은 대대로 물려받은 것들이어서, 누구든지 그녀의 보석들이 아름답다고 말만 꺼내면, 그 보석들에 관한 내력을 들어주어야만 했 습니다. 보석의 알이 한둘씩 빠져나갔거나, 색깔이 유행이 맞지 않은 것과는 상관없었습니다. 그녀에게는 할머니로부터, 또는 어머니로부 터, 몇 년 전 어디서, 무슨 일로 구입하게 되었고, 물려받았다는 사실 이 더욱 값지고 귀한 것으로 여겨질 뿐이었습니다. 명랑한 얼굴에 그녀 특유의 유머와 사고방식, 지혜로움과 친절함은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게 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조금씩 찾아오는 노쇠 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 습니다. 그녀는 1965년도에 사서 쓰던, 회색빛 자동차를 더 이상 운전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신문에 광고를 내어 좋은 값으로 팔게 된 것이 었습니다. 보통 4년에 한번씩 자동차를 바꾸는 미국인들의 경향을 따 져 볼 때 그녀의 자동차는 주인을 잘 만난 것입니다. 자동차의 나이가 26년이나 되었으나, 그녀가 타고 다닌 마일 게지는 25,000마일로, 보 통 사람들이 약 2년간 타고 다닌 거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도시에 살면서 주로 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니기도 하였겠지만, 그녀의 생활 권이 안정되고 큰 변화없는 삶을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자동차를 팔게 되니 기분이 어때요?”

“첫째, 자동차 보험을 절약해서 좋고, 둘째는 잃어버릴 염려를 하지 않아서 좋지요?”

그녀의 생각은 언제나 긍정적이었습니다.

“자동차를 끌어가는 날, 샴페인이라도 뿌립시다!”

“좋지! 역시 사람은 자신을 빨리 인정해야 된다고… …. 10년 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도 오늘은 할 수 없는 일들이 있거든… …. “

1900년도에 태어나 거의 1세기를 살아온 그녀가 깨닫고 느낀 것은 감사’라는 단어임을 언제나 강조하였습니다. 19세에 결혼을 하여 직 장생활을 반대하는 남편의 뜻대로 가정을 지켜오던 그녀는 1950년에 암으로 남편을 잃은 후, 40여 년 이상을 비서직으로 살아왔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인 55세 된 딸을 병원에 두고 있는 그녀에게 는, 옷을 혼자 입을 수 있고, 밥을 혼자 먹을 수 있는 것조차도 감사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받은 복 중에서 가장 큰 복도 뇌성마비의 딸을 갖게 된 것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 다. 그 딸은 자신의 삶에 가장 긍정적인, 신을 향한 눈을 뜨게 해주었 으며, 생활에 감사의 넘치는 조건들을 일일이 깨우쳐준 가장 큰 하나
님의 선물임을 눈물겹도록 감사하였습니다.

‘나이가 들어 가장 안타까운 일은, 육신의 연약한 한계에 더물러야 된다는 것이지요 젊었을 때 육신은 혼과 정신에 따라서 움직여 주지 만, 늙으면 상황이 전혀 다르지요. 한 발자국을 옮기려 하여도 마음은
급한데,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를 않아요!”

작년보다도 걸음결이가 느려지고, 말씀을 나누실 때마다 침을 튀는 횟수가 늘어난 그녀였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교회나 동네의 노인 들을 위한 모든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석하면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 는 능력껏 책임과 봉사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늙어지면 하루하루의 산사람 틈에 끼어 있음만을 확인하는 것으로 그저 만족한다는 어느 노인 친구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40여 년 을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으로 봉직한 후 혼자서 큰 집을 지키며 살아 가고 있었습니다. 성품이 조용하고 남과 어울리기를 별로 즐겨하지 않던 프랜시스는 은퇴를 한 뒤 너무도 빨리 쇠약해져 갔습니다. 결국 엔 거동조차 힘겹게 되어 사립 노인 아파트에 들어간 후, 1년 만에 세 상을 떠나시고 말았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행여나 누구인가 편지를 보내줄 것이라는 기대 감으로 매일 우체통을 열어 보았답니다. 그러나 그 희망조차도 3개월 후에는 포기하고 말았지요.”

프랜시스를 마지막으로 방문하고 온 사람에게서 전달된 그녀의 쓸 쓸한 여운이었습니다. 그녀가 사럽 노인 아파트로 이사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알고 있는 주변 사람들은 서운해하면서도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들 했습니다. 24시간을 상주하고 있는 의사, 간호사들과 미 국에서는 제일의 시설과 환경을 갖춘 소문난 곳이었지만, 아무도 그 녀의 갈 길을 붙잡지 못하였습니다.

인생의 절반의 세월을 소비한 후에야 내가 나를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여유라는 것을 한동안 물질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고 살았던 것에 대하여 막심한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 당시 나의 잘 못된 여유에 대한 이해로 인하여 가족들을 고생시키고, 나 자신을 들 볶던, 삭막하고 인정머리 없던 시절에 대하여 참회를 하게 됨을 볼 때 나도 늙어가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무가치하여, 의미가 없으니 아무것도 소중한 것이 없구나.


사람이 평생 동안 수고하여 얻은 것이 무엇인가?
세대는 왔다가 가지만 세상은 변함이 없구나.
해는 떴다가 져서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되돌아가며, 바람은 남으로 불고 북으로 불다가 돌고 돌아 다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흘러도 바다를 다 채우지 못하며, 그 물은 강으로 되돌아가 다시 바다로 흐른다.

만물의 피곤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니,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들어도 만족함을 모르는구나.
전에 있던 것도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한 일도 다시 하게 될 것이니, 세상에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 없다.

‘보라. 이것은 새 것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게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오래 전에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않으니, 앞으로 울 세대들도 우리 시대에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않으리라. (전도 서 1장)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이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탄식했던 것같이 나의 노인 친구에게서 제한된 기한의 허무함을 보게 됩니다.

“이 나이엔 결혼생활, 자녀양육,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도 내게 아무 런 의미를 주지 못하게 되지요. 즉, 바로 이것만이 절대적이라는 생각 들이 모두 사라진답니다. 그저, 오늘 하루 건강한 몸으로 남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산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뿐이라오.”

미세스 루이스 웨기는 새 주인에 의하여 멀리 사라져 가는 자동차 를 바라보며 천천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녀는 언제부터였는지는 몰 라도, 갖고 있는 것들에 대한 포기에 익숙해진 듯하였습니다.

찬 겨울 바람결에 서 있는 그녀의 자그마한 체구가 마치도 ‘과거’ 라는 푯말을 붙인 먼지 쌓인 동상처럼 오래도록 그 자리에서 떠날 줄 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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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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