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이라는 국가 이름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그가 믿고 존경하던 지도자는 실각하고, 새 지도자가 들어앉았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에 사람들은 새 세계가 열렸다고 외칩니다. 멀리 지구에서 들려오는 무선 전화 속의 아내의 음성은 그가 살아 있음을 알립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어요! 레닌의 동상이 사람들에 의하여 끌어 내려지고, 당신이 우주에서 일하는 한 달치의 봉급은 소시지 네 덩 어리를 살 가치로 하락했어요!”
“나는 이 역사 속에 누구인가? 나는 과연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 있는 가? 한 가지 확신이 오는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의 나를 향한 마음만은 변함이 없으리라 … …. 비록 모든 것이 변하고 없어졌어도 나의 가정만큼은 변하지 않았겠지! 정치도 이념도 돈의 가치도 우주의 꿈과 계획도 모두가 덧없이 느껴지는구나. 인간에게 사랑만이 가장 귀중한 것이라는 진리가 새삼스러워진다.”
313일을 우주선에 몸담고 임무를 감당하던 소련 우주 비행사 세르게이 크리칼레프의 일기 중의 한 토막입니다. 1991년 그가 5천 비퀴의 지구를 도는 동안 고르바초프가 실각하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선출되고 그의 조국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습니다.
“인간에게 사랑만이… …”를 가슴 밑바닥 깊이 새기며 우주선에 앉아 이 지구를 향한 그리움과 철저한 고독의 눈물에서 인간미를 느낍니다. 사랑이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세르게이의 고백처럼 우리의 사랑의 근원을 묻는다면, 역시 가정일 것입니다. 아내와 남편, 부모와 자녀 가정 안에서의 사랑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성숙 한 관계 형성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자녀들과의 생활의 일면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크리스마스에 딸아이로부터 감동을 주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그 선물을 내밀며 위로의 말까지 곁들이는 것이었습니 다. “엄마! 비록 늦었으나, 평생 못 가지시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여기 엄마가 어릴 적 갖고 싶어하셨다는 인형을..··”하면서 눈이 동그랗고 긴 노랑머리의 인형을 내밀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저녁, 흑인과 백인 홈레스 여인들을 위한 파티가 있었습니다. 늦은 저녁이었으나 교인들과 우리 아이들이 참석해 조촐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린 시절의 가난과 추위 속에서 떨던 잊지 못할 추억들 속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짧은 간증으로 나누었습니다. 그 시절, 어린 여자 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하던 노랑머리의 인형을, 나는 집안이 어 려워 끝내 가질 수 없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종이에 인형과 옷을 따로 그려 가위로 잘라 붙여서 노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의 손과 발은 동상으로 언제나 붉게 물들어 부어 오른 가운데 밤이면 가려워서 밤잠을 설쳐야 했었습니다. 추운 계 울날, 배가 고파서 참다 못하여 물이나 마음껏 마시려고 물 항아리를 열었을 때, 물은 칼날 같은 날카로운 몸을 세우고 항아리 안에 잔뜩 성이나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가는 얼음 덩어리를 잘라 내어 입에 넣고 우두둑 깨물어 먹었을 때의 내장 깊숙이 전해 지던 소름 끼치던 시리움, 폐병과 심장병을 겸하여 앓고 누워만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 어린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둡고, 춥고, 소망이 전혀 없는 미래를 향하여 질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시뻘건 각혈 만큼이나 절망적이던, 그런 어려운 삶 속에서 그리스도는 내게 찬란한 빛이 되어 그 어둡던 시절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내용의 간증이었습니다.
딸 아이들은 얼굴이 붉게 물들고 눈물을 글썽이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 뒤 아이들은 생일, 어머니날, 회의차 집을 비웠다가 돌아올 때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의 어린시절 갖고 놀지 못하였던 – 앞치 마를 두른 흰 곰인형, 풍선, 꽃 등의 선물들을 보내오곤 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실은 이런 선물들을 받을 때마다, 내 속에 숨어있는 과거의 상처받은 아이(Inner Child)가 치료함을 받는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장난감 가게를 들르게 되기라도 하면, 인형들 앞에서 아이들보다도 더 탄성을 올리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내 몫으로 인형을 성큼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나 자신도 이 나이에 왜 그렇게 인형들을 좋아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로부터 인형을 선물받은 후, 아이들은 때때로 나의 침대 위에 올라와 같이 인형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마음껏 인형의 머리를 빗기고 드레스를 새로 입히며, 그 시절 동무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곤 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부모의 품에 안겨 인형놀이만 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알에서 막 깨어난 작은 새가 뒤뚱거리며 날개를 퍼득이듯이, 그들의 가능성을 확인하며 생활의 반경을 자꾸만 넓혀 가려 합니다.
어느 날, 작은애가 정색을 하며 말하였습니다.
“엄마 학교에서 집으로 걸어갈 터이니 구태여 데리러 오지 마셔요”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얘가? 찻길을 계속 건너야 하는데, 큰일나려고 … …”
“이젠 다 컸어요! 혼자서도 길을 잘 건널 수 있다고요!”
아이의 단호한 태도에 당황한 것은 나였습니다. ‘이제 겨우 아홉 살짜리가 다 컸다고? 옳지, 세상이 조금씩 만만해 보인다 이거로 군.”
그러나 언제부터였는지 아이들의 방문 앞에 나붙기 시작한 대 자보들을 생각하며, 아이들이 보이지 않게 부모의 품으로부터 빠져 나가려는 모습을 알게 됩니다.
“Don’t Disturb! (방해하지 마시오!)”
“Please Knock! (노크를 하시오!)”
방해라니! 어릴 적엔 시도 때도 없이 병치레와 사고로 인해 부모를 놀라게 하더니만, 이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조금씩 알게 되는지, 하는 말이라니 … …. 이제는 학교도 혼자 다닐 수 있다고 선언하는 아이 앞에 왠지 섭섭하고 서운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혼자서 찻길을 건너가는 아이가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멀찌감치 따라가며, 묘한 감상에 뒤섞입니다. 아니, 나는 분명 어머니로서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우리 엄마, 아빠만이 제 생애 절대자로 믿던 아이들은 의식을 깨듯이 선생님과 주변 인물들에 대하여 믿고 따르기 시작합니다.
“얘들아 너희들 대학가더라도, 아예 멀리 갈 생각들 말아라! 집에서 학교 다니고, 특히 남자 친구들이나 여자 친구는 대학교 졸업 때까지 사귈 생각들은 하지 말아라!”
이제 열다섯 살, 아홉 살, 여섯 살짜리들을 불러앉혀 놓고 미리 엄포를 합니다.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소리를 해보지만 자신이 없습니다. 무분별한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결단을 꺾거나 능력을 약화시키지 않았는가 하는 자책감에 사로잡히며, 아이들은 결국 나의 소유물로 남을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집 앞의 전나무 가지 위에 쓸모없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빈 새 둥지들을 생각하면, 어느새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둥지는 알이 있을 때만 필요한 것을 … … 알에서 깨어난 어린것들이 날기 위하여 날개를 파닥거리며 땅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날개를 부러뜨리는 위험조차 감수하면서 결국엔 아무도 둥지를 지키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에미 가슴이 따뜻하고 포근하고 안전하다지만, 경계가 그어져 있지 않은 그 푸르고 해맑은 높은 하늘이 기다리고 있는데 … ….
날아야 되겠지! 더 높고, 더 멀리, 더 힘차게… …. 어미새가 정녕 닿지 않았던 그 세계를 향하여 … …. 그래, 포기하자. 평생 그들을 잡아놓을 생각일랑은 … …. 언젠가는 완전 독립’을 외치며 그 원대한 미래 속으로 떠나갈 아이들을 위하여 사랑, 사랑만 하자! 언젠가는 나의 세대는 지나가고 영원 속으로 먼저 귀의하는 날이 오리니.
우주인 세르게이 크리칼레프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지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 최고의 과학 문명의 영웅으로서, 그가 깨달 은 진리는 사랑만이 인간의 가치를 나타내는 영원 무궁한 진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정을 주시고 그 안에 자녀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두 손을 모으며, 언제나 그분의 품속을 빠져나가고자 애쓰던 나의 철없는 모습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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