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있는 청년이 오랜만에, 여름방학을 이용해 잠시 집에 다녀가게 되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음악인으로서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청년에게서 그의 음악만큼이나 무르익어 가고 있는 한 영혼의 아름다운 성장을 엿볼 때 여간 기쁘고 자랑스럽지 않았습니다.
음악인으로서의 꿈은 오직 그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는 부모님의 꿈과 이상이 모아진 헌신적인 노력과 피눈물나는 아픔이 바위 처럼 그의 꿈을 받치고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을 냉정하고 절도있게 인도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사랑의 물을 부어주며, 그의 갈등과 고독을 함께 부여안고 꿈을 키워가고 있었습니다. 청년은 자신의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주신 음악의 세계를 통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태도로 모든 과정에 최선을 다하여 진실하게 임하고 있있습니다.
그가 첫 해에 독일에 도착한 8월부터 시작된 겨울은 다음해 4월이 되어야 끝이 나는 참으로 길고 긴 겨울이었습니다. 겨울의 눈보라 혹한 속에 겪었던 외로움은, 마치 보이지 않는 눈발 속에 향방조차 모른 채 헤매고 있는 발걸음과 같았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염원하던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좌절감, 하루 12 시간 이상의 연습과 자신과의 싸움은 때로는 두려움이 되기도 했습니 다. 세상은 초고속 시대를 향하여 마구 질주하고 있는데, 자신은 중세기음악 속에서 세상과는 거의 단절된 채 젊음을 산화하고 있는 것이 한심스럽게도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그의 선생님과 동료들이었습니다. 그의 선생님은 참으로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청년에게 음악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영혼과 육신의 순수와 청백함 속에서 걸러져 나오는 음 률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이 될 수 있음을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과거에 뉴욕에서 겪었던 수년 동안의 서로의 경쟁과 시기와 질투, 루머 속에서 시달리던 그에게, 그의 동료들은 전혀 새롭게 접근했 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고 음악이 잘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서로 지적해 주며 함께 연구하고, 함께 깊은 음악의 세계에 도달하도록 서로 이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음악도들 속에서 겪어야만 하는 소외와 열등의식, 좌절이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 습니다. 그는 어느 날, 선생님께 자신의 내부에 일어나고 있는 갈등과 번민을 털어놓으며,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제자 중에서 제일 못하지 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 속에 말끝을 흐리는 그에게, 선생님은 갑자기 두 팔로 그를 강하게 붙잡고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말하였습니다. “···나의 제자들은 단 한 사람도 못하는 사람이 없어! 단 한 사람도… …” 하며 흐트러짐 없는 신뢰와 격려로 청년을 붙들어 주었습니다. 청년은 비로소 수년간 안개 속을 찾아 헤매던 꿈의 형체가 드러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 사람의 꿈이 이루어지기 까지는 삶의 혼돈 과정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희생과 눈물이 있습니다. 외로움과 좌절이 있습니다. 생면부지의 환경 속에서 또 다른 인간 관계에 파고들어가야 합니다.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과 절망 속에 홀로 밤과 낮을 방황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곳은 성결한 곳, 인간만이 꿈을 꿀 수 있는 신비스럽게 역동하는 힘과 에너지가 고압의 전류처럼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삶의 험한 터전에서 땀을 흘리며 애 쓰며, 때로는 절망 가운데 고통하는 이들을 위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8)
꿈은 꾸는 자의 것입니다. 미래를 향한 광대한 꿈을 설계하고 그 광맥을 찾아가는 이는 언젠가는 찾을 것이나, 설계하지 않고 희생과 인내가 동반되지 않은 꿈은 미래가 와도 완성시킬 것이 없습니다.
음악인으로서 하나님의 선한 목적과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다시 부모와 여 동생을 두고 떠나가는 청년을 배웅하면서, 하나님의 위대한 손길이 이미 그의 믿음과 삶의 순종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언제가 세계 정상의 무대 위에서 음률의 우아한 날개를 펼 날들을 기다리며, 그 날이 오기까지 내 기도의 날개도 접을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Incontri in Terra di Siena) 첼리스트 팀 박(Tim Park)은 에너지 넘치고 짜릿한 연주와 더불어 표현력 있고 아름다운 음색으로 찬사를 받아왔습니다.
협연자로서의 연주 활동 외에도 그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Staatskapelle Berlin)의 부수석 첼리스트와 에를렌부슈 현악 4중주단(Erlenbusch String Quartet)의 첼리스트로 활동하며 20개국 이상의 콘서트홀과 무대에 올랐습니다. 팀은 뉴욕 체임버 오케스트라, 디트로이트 심포니,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베를린, 베를린 심포니커, 필하모니 슈트베스트팔렌, 텔아비브 카메라타, 모스크바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모스크바 필하모닉, 아르메니아 국립 필하모닉, 리투아니아 국립 체임버 오케스트라, 베네수엘라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한국의 여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으며, 블라디미르 페도세예프, 다비드 게링가스, 드미트리 유로프스키, 테오도르 쿠차르, 제라드 슈워츠, 레너드 슬래트킨, 나빌 셰하타, 에두아르트 톱챈 등 지휘자들과 함께 무대에 섰습니다.
열정적인 리사이틀 및 실내악 연주자로서 팀은 세계 각지의 음악 페스티벌에서 오늘날의 주요 아티스트들과 협업해왔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실내악 페스티벌, 베를린 인토네이션 페스티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음악 페스티벌, 루트비히스부르크 궁전 축제, 루체른 페스티벌, 뷔르겐슈톡 페스티벌, 키프로스의 파로스 국제 실내악 페스티벌, 산탄데르 음악 페스티벌, 아스펜 음악 페스티벌, 프랑스 살롱의 엠페리 국제 실내악 페스티벌,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의 소노로 페스티벌, 일본 아코와 히메지의 르 폰 음악 페스티벌 등에 출연했습니다. 그가 협연한 저명한 음악가로는 다니엘 바렌보임, 엘레나 바시키로바, 알레시오 백스, 키릴 거슈타인, 데니스 코주킨, 안드라스 쉬프, 라하브 샤니, 김선욱, 유자 왕, 콜야 블라허, 보리스 브로브친, 르노 카퓌송, 강클라라 주미, 가시모토 다이신, 니콜라이 즈나이더, 나빌 셰하타, 프랑수아 르뢰, 엠마누엘 파퓌, 요르크 비트만, 안드레아스 오텐자머, 틸 브뢰너, 안젤라 데노케 등이 있습니다.
한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팀 박은 여덟 살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열한 살에 뉴욕 줄리어드 음악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열세 살에 줄리어드 프리칼리지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콘체르토 데뷔를 했으며, 이듬해 뉴욕 링컨센터에서 리사이틀 데뷔를 했습니다. 대통령 장학금 수혜자로서 그는 예일대학교에서 의학과 음악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첼리스트 다비드 게링가스의 초청으로 독일로 이주한 그는 뤼벡 음악대학교와 베를린의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쳤습니다. 팀은 또한 보리스 페르가멘쉬코프, 야노스 스타커, 스티븐 이서리스, 필립 뮐러, 아르토 노라스 등의 첼리스트들과 도쿄 스트링 콰르텟, 라살 스트링 콰르텟과 함께 마스터클래스와 레슨에 참여했습니다. 2013년에는 S&R 재단 워싱턴 어워드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와 볼티모어의 스트라스모어 홀에서 데뷔 공연을 가졌습니다.
팀은 1740년 나폴리의 젠나로 갈리아노(Gennaro Gagliano)가 제작한 첼로를 사용하여 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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