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음”

한 줄기 빛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천장의 어둠을 화장한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 지금,
어느 길을 가야 하고
어느 길을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마침내 왔소.
모든 준비는 끝났소.”

오늘, 바로 오늘이오.
내일이 아니라
불모의 산마루에서
홀로 죽어가야 할 오늘이오.

놋쇠 팔찌들이 서로 부딪치며
쨍그렁—
영혼이야말로 뼈뿐인 육신 속에 갇혀
바다처럼 출렁인다.

거리에는 저주와 야유가 흩날리고,
그 한가운데
불똥처럼 번쩍이는 숨결이 있다.

“나는 씨름을 했소.”
꽃과 푸른 물이
헐떡이며 형장을 향해 올라간다.

내일! 내일! 내일!
우리는 인간이오,
견딜 수 없는 존재—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말하리라.
“나는 가겠소.”

그때 썰물은 속삭인다.
헤매는 영혼들의 노래,
사랑의 잔향,
그리고 끝내 가라앉지 않는 파란 노래로.

© 윤 태헌, 1996

Image result for 해음 사진
Unknown's avatar

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Poetry.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