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태헌
바람 한 점 없었는데, 사원이 떨렸다.
열 개의 발톱, 기억처럼 예리한 것들이,
두 개의 거대한 날개와 함께 한 번 치고는
사라졌다. 공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늘은 단단히 단조된 강철빛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고요히 버티고 있었다.
그때, 손가락 사이로 무언가 미세한 것이 흘렀다.
너무 부드러워서 오히려 눈을 멀게 하는 빛.
작은 등불처럼 생긴 별 하나가
손 안에서 흔들리며,
아래 세상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은 구불거렸고,
빛은 번개처럼 터졌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그 빛은 발치로 기어들더니
흙 속으로 스며 사라졌다.
그러자 대지의 깊은 내장 속에서,
차가운 웃음이 솟아올랐다.
그건 사람의 웃음이 아니었다.
침묵의 배 속에서 태어난,
샘물의 웃음이었다.
나는 그 소리 앞에 서서
마치 그 웃음이
나를 기억해내는 것만 같아
한참 동안 숨을 멈췄다.
1997, 그리고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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