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 윤 태헌, 1997, 그리고 2025

저쪽에서
붉은 표주박 하나가
물결 위로 떠오른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이쪽으로 온다.

그의 얼굴은
두려움에 젖어 있었다.

공중의 발걸음이
조용히 다가온다—
의미와 침묵 사이에서
들리는 소리.

문자들,
비명을 지르는 영혼들,
감옥의 검은 창살에
목이 졸린다.

그러나—

글자와 글자 사이,
줄과 줄 사이,
책장의 여백 속에서
한 줄기 숨이 일어난다.
그것이 자유다.

어릴 적부터
굶주림에 시달려온 사람,
늙은 어부는
몸을 일으켜
숟가락으로 국을 젓는다.

천천히,
바다를 젓듯,
잊었던 기억을 풀어내듯,
그는 국을 젓는다.

The current image has no alternative text. The file name is: image-38.png

Unknown's avatar

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This entry was posted in Poetry. Bookmark the permalink.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