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즌 엊그제가 봄인가 싶더니, 어느 더 여름도 지나고 가을의 심장 안에 불현듯 서있다. 가을의 얼굴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화원에 들렀다. 화원에는 온통 색색깔 의 국화꽃들이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노랑색, 흰색, 자주색, 황갈색 … … 각자의 담겨진 화분 안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너도나도 들어내고자 안간힘을 쓰는듯 하였다. 모두가 탐스럽고 아름다워 어떤 색깔을 고를까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것저것 화분을 들었다 놨다하며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한 화분 안에 노랑, 자주, 황갈색, 세 가지 색깔의 국화가 담긴 큰 화분들을 발견하였다. 누군가 나 같은 욕심쟁이를 위해 한 화분 안에 여러 가지의 국화꽃을 잘 조화시켜 놓은 것이었다. 나는 만족하여 얼른 두 화분의 국화꽃을 골랐다. 이 정도면 올 가을을 호사스럽게 보낼 것만 같았다.
가을바람이 언제부터 불기 시작하였는지 알 수는 없었어도, 내 삶속에도 이미 파고 들어와 있음을 실감케 된다. 내가 내 자신의 가을을 느끼던 날이 언제부터였을까? 그날은 몇 해 전 어느 저녁 예배시간이었다.
남편은 한창 시편을 본문으로 하여 아들 압삽롬을 피해 달아나는 아버지 다윗왕의 처절한 심정을 전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자 솥에 올려놨던 고깃국이 생각났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앉아있던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겨우 마련한 우리 집이 불길에 휩싸여 있는 장면이 순간에 눈앞에 스쳐갔던 것이다. 나는 너무나 놀라고 당황하여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멍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예배 중 이런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남편과 교우들의 눈동자들과 마주치자 나는 비로소 정신을 가다듬고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겨우 말을 이었다. “…집에 전기 솥 불을 켜놓고 그냥 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날, 저녁예배는 남편의 말대로 사모 때문에 엉망이 되고 말았다. 교회서 집까지 오는 사이에 우리 부부는 단 한마디도 서로에게 말할 수 없었다. 다만 멀리서 보이는 집에 연기가 솟아오르지 않음을 감사하며 “할렐루야”를 속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고깃국은 바닥까지 타들어가 새까만 숯이 되고 말았지만 전자 솥은 자동장치가 되어있어 더 큰 사고는 방지되었던 것이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이미 인생의 가을이 파고 들어와 있음을 종종 체험치 않을 수 없었다.
올해는 생일을 보내면서 문득 생일이라는 이유로 더 이상 자녀들에게 자꾸만 선물로 받고만 있을 수 없다는 자각이 왔다. 우리 내외는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였다. “이제 후로는 생일선물, 크리스마스 선물 더 이상 필요 없다. 너희들의 존재 자체로 이미 충만하며, 우리가 받아야 될 사랑과 누려야 될 복을 이미 넘치도록 받았다. 만약 그냥 지나기가 서운하면, 우리들의 이름으로 아프리카에 말라리아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해 모기장을 보내거라. 모기장 한 장에 십불씩이라하니, 너희들의 능력만큼 보내거라.”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나니 마음이 가을 낙엽처럼 가벼워짐을 느끼게 되었다.
사람이 계절의 변화를 알고, 느끼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지혜로움 중의 하나인 것 같다. 봄, 여름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갔듯이, 이 가을도 언젠가는 그리움만을 잔뜩 남겨둔 채, 우리 모두의 곁을 지나갈 것이다. 이 가을이 서둘러 떠나기 전에, 나는 가을처럼 내 마음을 빨갛게, 노랗게, 때로는 담청 색으로 물들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예쁘고 불타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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