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 (목사관 신앙칼럼 #5, LA 크리스찬 투데이, 10/31/2007) © 윤 완희 사모

남편이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70대 중반의 부부가 있다. 남편의 이름은 챨스라하고 부인은 애벌린이라고 부른다. 챨스는 몇 년째 양로원에 들어가 있는데 겉보기에 는 너무나 멀쩡한 노신사라, 첫 대면 때에는 환자라고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챨스의 뇌의 기능은 거의 상실된 상태로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

부인인 애벌린의 일과는 오전에는 자신을 돌보고, 점심때부터 양로원에 출근하여, 남편과 함께 그 좁은 병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이다. 그녀가 곱게 단장하고 양로원에 도착하면, 남편의 침대 곁에서 먼저 노래를 부른다. 제목은 “Let me call you a sweet heart”, 그러면, 눈의 초점을 잃고 있던 챨스는 눈을 번쩍 뜨고, 아내 애벌린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며 손을 잡아준다. 그리고, 노래가 끝날 즈음이면 전혀 낯선 눈길로 부인을 외면해 버리고 만다. 이상하게도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시작하던 때에 함께 불렀던 연가는, 챨스의 뇌의 기능 안에 아직 살아있음이다. 애벌린은 찰나에 스쳐 가는 챨스의 사랑의 눈빛에 그날 하루 하루를 위로 받고 있었다. 애벌린은 지난 발렌타인에 챨스를 향해 이렇게 편지를 썼었다.

“사랑하는 찰스, 당신이 비록 내게 아무 런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다만 당신이 나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사랑과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애벌린은 14세때, 이웃마을의 ‘애플 페스티발’에서 챨 스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 챨스의 당황해 하며 붉어지던 얼굴빛은 애벌린의 심장 가운데 인장처럼 새겨지고 말았다. 그 후, 첫 데이트 때의 가을 비, 결혼식 때의 기쁨, 외동딸의 학예회 발표 참석, 가족들과의 행복하기만 하던 추수감사절 디너, 크리스마스의 흰눈 속에 난생 처음 방문했던 뉴욕 빌딩 숲의 충격, 첫 손녀를 안았을 때의 기쁨 등 모두가 귀하고 거룩했던 한 순간들을 들춰 내며, 애벌린은 망각의 세계로 멀어져 가는 챨스와 함께, 하루 하루의 낯선 여행길을 가고 있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초행길에 들어선다. 사랑하는 이들의 병과 죽음, 생각지 않은 재정 파산, 자녀들의 문제, 이혼, 노화현상, 몸담고 있는 공동체로 인해 우리 자신은 때로는 원치 않는 길로 들어서 있음을 발견케 됨이다. 이 때에 우리의 평생의 훈련된 믿음이 그 거친 길에서 얼마나 큰 동행자가 되는지! 또한 지나간 순간 순간과, 사랑했던 시간들이 주었던 에너지와 기쁨이 얼마나 소중했던지를 놀라운 눈으로 되돌아 보게된다.

참으로 한치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삶이다. 이 글을 마무리지을 즈음에, 애벌린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왔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를 남편 찰스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딸과 전화통화 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다. 나는 믿지 못할 충격 속에 한동안 가을 뜨락에 나가 서성거려야 만 되었다. 그리고 떨어지는 나뭇잎들 속에 자연의 시계 광음을 새로 운 귀로 들어야 만 했었다. 이제는 하나님의 품에 안겨 챨스를 기다리고 있을 애벌린을 생각하며 내 삶의 시간 표를 쥐고 계신 창조주를 향해 긴 침묵의 낯선 여행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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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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