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약해져가는 어머니를 뵙기 위해 한국서 오빠 가족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그중에 우리 가족이 이민 올 때 다섯 살짜리였던 조카가 어느새 결혼 하여 열 살짜리 어린 아들을 데리고 함께 왔는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조카는 나를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오랜 세월동안 고모를 생각하며 ‘꼭 감사의 말을 전하길 원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저녁에 집에 올 때면 바나나와 사탕, 과자 등을 꼭 사다 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 조카는 언제나 고모가 집에 들어오는 문소리가 날때까지 졸린 눈을 비벼가며 늘 기다렸다고 한다. 나는 전혀 기억 할 수 없는 일들이었는데, 조카는 서른일곱살이 된 지금까지 그 일을 기억하며 감사해 하였다. 나는 조카의 감사하는 마음에 대해 오히려, 그동안 무관심하게 지냈음을 부끄러워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처럼 사람과 사람을 어질고 착하게 만드것이 어디있을까(?) 다시 생각케 되었다.
그 뿐이겠는가? 사람이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산다는 것은 들녘에 핀 꽃처럼, 때로는 군불속에 타들어가는 낙엽처럼 마음을 아름답고 향기롭게 만든다. 감사하는 마음은 삶을 순결하게 만들고, 무조건적인 소유의 욕망으로 부터 자유롭게 하며, 어리석은 생각들조차도 쫓아내는 힘이 있다. 특히 인간과 인간 사이에 서로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될 때, 쌓였던 아픔과 단절이 치유되고 새로운 시작을 갖게 된다. 오랜 세월 가족 중에 평생의 짐이 되고 문제의 중심이 된 구성원이 있었다. 언젠가는 풀어야만 될 짐 보따리처럼 때로는 무관심으로, 때로는 미움으로, 때로는 잊혀진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러나 내면 깊은 곳에서 신앙인으로서 마땅히 화해하며 사랑해야만 될 숙제를 안고 있던 어느날, 그 분이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내 삶에 가시와 같은 그분으로 인해, 나는 다듬어지고 있었고 좀 더 세상에 대한 책임과 의무, 궁극적인 관심과 눈이 열려지고 있음을 발견케 되었다.
놀라운 일은 감사하는 마음 속엔, 이미 치유되어야만 될 상처와 풀어야만 될 짐 보따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감사하는 마음은 지혜로운 스승같아, 묵은 것으로 부터 일어서게 하며 새로운 출발을 과감케 한다. 또한 감사의 마음은 매순간 끊임없이 달아나는 행복을 내 마음 한가운 데 붙들어 두는 신비한 힘이 있다. 밥상에 올려진 음식들 속에, 단풍의 찬란한 빛속에, 한 낮의 밝음 속에, 늦은 밤 컴퓨 터를 두드리고 있는, 내 곁에 졸린 눈으로 머리를 조아대며 “그르렁” 거리는 고양이의 철저한 신뢰와, 한 가족의 사랑 속에 온통 감사와 행복이 휘감고 있음을 발견케 된다.
그러나 사람에게서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질때 처럼 처참해 지는 순간이 없다. 감사하는 마음이 부재된 공동체와 개인은 언제나 ‘문제’ 때문에 시끄럽고 상처로 신음케 된다. 자기분수를 알지 못하는 행동과 언어들이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삶에 고난이 오면 나갈 길을 찾지 못한다. 작고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 고난과 고통마져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나를 향한 당신의 목적이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기억 하는 믿음의 훈련이야 말로, 진정한 감사의 마음이 아닐까.
긴 세월의 흐름 속에도 잊지 않은 조카의 ‘감사하는 마음’ 속에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리스도를 생각한다. 난 무엇으로,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품고 살아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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