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지난 주간에 일년에 한번 있는 가족휴가를 보내었다. 그동안 우리부부와 고양이 두 마리만 살아왔던 조용했던 집안은 갑자기 생기로 가득찼다. 늘 굳게 닫쳐져 있던 손님방은 뉴욕에서 내려온 큰딸가족으로 인 해, 사람과 물건들로 북적대었다. 올해 네 살 된 큰 외손녀딸과, 이제 막 육 개월이 지난 둘째 외손녀딸의 재롱, 울음소리, 웃음소리들은 오랜 동안 잃어버렸던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되찾기라도 한 듯이 마냥 즐겁기만 하였다.

일년에 한번이지만, 흩어져 직장 생활하는 둘째 딸과 막내 아들, 남편과 큰사위의 목회 일정들을, 서로 조정하여 온가족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주간을 정하는 일은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온가족이 며칠이라도 함께 지내는 일은 소중한 일년대사다. 특히 우리부부는 어린 외손녀딸들을 자주 볼 수 없는 터라, 가족휴가 동안 분초를 다투며 아이들과 놀이를 하느라 분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 나는,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큰 외손녀 딸과 함께, 목사관의 까만 드라이브웨이를 화판 삼아 색색깔의 분필로 그림놀이를 하였다. 아이는 그 넓고 긴 드라이브웨이에 마음 껏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말에 놀라, 입과 눈을 활짝 뜬 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리곤 곧 분홍색 분필을 고사리 같은 손에 잡고는 길고 긴 길을 그렸다. 아마도 뉴욕에서 테네시까지 오는 열두시간의 지루했던 긴 하이웨이가 인상적인 것 같았다. 나는 길 끝에 초록색 분필로 우리 집을 그렸다. 그림을 지켜보던 아이는 그 안에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 동생, 이모, 삼촌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유난히도 머리가 큰 두 마리의 고양이도 그려 넣었다. 아이와 나는 서로 바라보며 ‘깔깔’ 대고 웃었다. 그리고, 나는 빨강색 분필로 하트를 그렸다. 아이도 눈을 반짝이며 하트를 따라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아이는 문득 나의 눈을 바라보며 “할머니 사랑해요!”라고 말하였다. “나도 너를 사랑하지!” 우리는 손끝을 잠시 멈추고 서로의 진한 사랑의 눈빛을 실감하였다.

나는 아이에게 내 이름을 가르켜 주며 써보라고 했다. 아이는 서툰 알파벳으로 힘을 다해 한자씩 써 내려갔다. 나는 아이의 서툰 글씨체의 내 이름을 찬찬히 확인하며 가슴이 뭉클 해져왔다. 그것은 세상에서 “할머니”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은 후에 갖는 벅찬 감동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재차 물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아이는 또렷하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더욱 더 신이나, 저물어 가는 줄도 잊은 채, 꽃과 나무, 별, 구름, 태양, 기차와 비행기, 교회와 학교도 그리며 그 넓은 화판을 화려한 색상들로 가득 채워나갔다. 그 다음날, 아쉽게도 밤새 내린 비로 우리들의 그림놀이는 깨끗이 씻겨버렸지만, 내 가슴 언저리엔 지을 수 없는 기쁨으로 새겨졌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아 세상을 헤메이다가 비로소 가정으로 돌아 왔을 때 그것을 발견한다”라고 영국의 시인인 조지 무어는 오래 전에 행복의 원천이 가정으로 부터 시작 됨을 말하였다. 비록 짧은 여정이었지만,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 ‘함께 있음’으로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이었다.

오늘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평생의 고난과 어려움도 인내하며 극복하는 수많은 이들을 만난다. 보다나은 미래를 위해 기러기 가족으로, 서류 미비자로, 디아스포라로, 남북 이산 가족으로 삶의 화폭을 그려나가고 있다.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해도 포기 할수 없는 것은, 가족은 오늘 내가 돌아가야 될 이 땅의 천국을 향한 길이기 때문이리라.

© 윤 완희

(목사관 신앙칼럼 #17, LA 크리스찬 투데이, 8/25/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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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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