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미학”

요근래 새로 부임한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새로운 만남의 시간을 즐기고 있다. 목회의 또 한번의 신혼기간이 시작 되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우리 부부의 이민 목회사역 30 여년 가운데 모두 여덟 교회를 남편이 담임자로 사역했다. 그 중에 네 교회는 미국인 교회였고, 미국인 교회 담임 중에 같은 장소에서 한인들을 위해 두 한인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다시 두 곳의 한인교회를 목회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토록 멀고 험하기만 한 것 같았던 목회 길이 후반기에 들어섰음에 세월의 무상함을 생각케 된다.

어느 분이 물었다. “새 교회에 가서 새로운 분들을 만나는 기분이 어떠신지요?” 언제나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몹시 흥미롭고 가슴 떨리는 일이다. 늘 경험하는 일이지만 나의 마음 문을 얼마나 열어놓고 상대방을 만나느냐에 따라 만나는 즐거움을 더할 뿐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는 단단 한 밧줄처럼 한순간 한순간이 이어져 나간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어떤 선입견이나 기대감, 내 취미와 성향에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묶어두고 인간관계를 시작하면 결국엔 실망과 좌절로 끝나고 만 경험을 상기케 된다.

지난 일이지만 한때는 목사의 아내로써 많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나 스스로가 제한된 환경과 성도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심으로 인해 온전한 내 모습대로 살수 없었기 때문이다. 행여나 어느 모임에서 나의 의견을 말하고 싶어도 그것이 남편의 목회에 누를 끼치진 않을까? 또한 화사한 패션 감각을 표현하고자 하였다가도 혹시 어느 분의 마음에 걸림을 주진 않을까라는 기우가 먼저 앞섰다.

또한 종종 허탈감과 분노, 몸과 마음이 지쳐있어도 나 홀로 제단 앞에서 눈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상의 경사조차도 자랑과 교만이 될까봐 나눌 수 없었다. 인간의 감성을 참고 누르는 상태에서 매주, 때로는 매일 성도와의 만남은 허공을 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이런 일방적인 만남을 더 이상 지탱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었다. 신의 이름 아래, 내 자신을 몽땅 분실해버릴 것만 같았다.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 즐길 수 없고, 개성있는 삶을 찾을 수 없다면 내가 어떻게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몹시 신음하며 앓기도 하였었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내 자신이 상처를 입을까봐 마음 문을 활짝 열어두지 못했던 결과로 성도들과의 만남의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내 안에 가진 것이 없는데 자꾸 줄려고만 하니 금방 지치는 것이었다.

줄 것이 없을 때는 이젠 억지로 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피곤 할 때는 휴식을 취하며, 일주일에 하루는 늦잠에 빠진다. 웃을 일이 있을 때에는 더 이상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닌 뱃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웃음보를 터트려 주위사람 을 놀라게 한다. 교우들과 포옹을 할 때는 눈과 눈을 바라보 며 가슴과 가슴을 맞댄다. 경청하는 즐거움에 빠져든다. 창의적인 생각이나, 삶에 간증이 생기면 주저함 없이 나눈다.

성도들 속에서 행복의 감정을 느끼고, 사랑 받고 있음과 사랑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이 모든 것들이 요즈음 남편의 목회 후반기에 내가 추구하는 성도와의 만남의 미학이다.

© 윤 완희

(목사관 신앙칼럼 #18, LA 크리스찬 투데이, 8/12/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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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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