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 완희, (목사관 신앙칼럼 #20, LA 크리스찬 투데이, 1998)
어느날, 바닷가를 거닐다가 바다는 더 이상 파란색이거나 초록빛에 만 머물러 있지않음을 발견하였다. 바다는 쉴새없이 숨을 몰아쉬며 새로운 빛과 색체속에 살아간다. 우리가 늘상 말하는 파랑색과 초록색은 그 중에 하나 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바다를 말할 때는 “바다가 옥색처럼 파랗다” 거나 “초록빛 바다”라고 부른다. 내 의식 속에도 바다가 한가지의 색체가 아님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느 아침에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품고 있는 눈부신 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머나! 참 아름답구나”하며 감탄사를 부르짖기도 하였고, 어느 아침엔 비바람에 세차게 출렁이며 노한 모습으로 모랫사장을 침몰시킬 듯이 덤벼드는 흙빛의 바다를 바라 보면서도, 나는 여전히 바다는 파란 색이라고 내 의식 속에 말하곤 하였다.
나는 한동안 바다와 친근해지기 위해, 이른 아침이면 맨발로 모래사장을 수 마일을 걷곤하였다. 장난꾸 러기 처럼 밀려왔다 밀려나가는 파도를 바라보며, “고마워! 네가 이토록 수백년, 아니 수천년을 출렁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맑고 깨끗하게 몸 을 지켜줘서!”하고 인사 할 때, 바다는 내 폐부 깊숙이 들어와 숨쉬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바다의 무채색깔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바다는 스스로의 색을 아예 갖고있지 않았다. 바다는 한도 끝도없는 세상의 모든 색을 담을 수 있는 바다 자신 뿐이었다. 바다는 한가지의 빛이나 색깔 만을 주장하고 있기엔 너무나 넓고 깊었다.
인간 속에도 하나님이 주신 색체와 빛을 인정치 못해 애 쓸 때가 있다. 언젠가 두 딸들이 고등학교 시절 에 미장원엘 다녀오게 되었다. 그 애들은 수 시간 만에 부모의 눈치를 살피며, 집안 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머리 색깔이 둘다 노랗게 변하여 돌아왔다. 평소에 짙은 갈색머리결을 가지고 있던 아이들이, 케미칼로 물들인 머리카락은 갑자기 인조냄새가 물씬 나는 듯하였다.
아이들은 새로운 색체의 변화를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드렸다. 나는 그 들의 모방된 색깔의 변화를 바라보 면서, 마음 속으로 속삭이고 있었다. ‘이것은 자신의 빛을 찾기 위한 과정이야! 너희들의 빛, 너희들 만의 색체를 찾아내기 위한 몸부림이야! 그러 나, 곧 네 자신들이 이미 갖고 있는 색으로 돌아오고 말거야! 우리는 늘 이렇게 찾아헤매고 다니지만, 언젠가 네 빛과 네 색체를 사랑하게 되고 진정 만나게 되지!’ 아이들은 화장실을 들락달락 하면서 거울 속의 자신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인정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큰 아이는 한동안 우울해보이기 까지 하더니만, 곧 상점에 나가 자신의 원래의 색깔을 되사오고 말았다. 자신의 원래의 빛을 수 시간 만에 다시 되찾은 아이는 안심해 보였다.
인간이 갖고 있는 빛과 색체는 과연 어느 것인가?
그가 순수해지고 맑아질수록 그 빛은 더욱 더 많은 색상과 빛을 투영하며, 인간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 빛을 전달한다. 그 빛은 생명의 근원으로부터 전해진 빛이기에, 삶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함과 남을 인정해주고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해독해 낼줄아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 빛과 색체는 두려움이나, 부정되 고 미움과 원망속에서는 절대 발하지 못하는 신비가 있다.
더군다나 우쭐대거나 거만한 자세로는 감히 드러낼 수 없다. 다만 너와 나의 마음의 눈으로 만이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기에 사람들은 흔히 지나치기 쉽고 도외시하게 된다.
어느날 문득, 바다가 더 이상 파란 색에 머물러 만 있지 않음을 발견하 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이 내 영혼속에서 해독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 빛의 풍요와 잔치, 그 조화된 절재와 아름다운 투명한 가슴에서 나는 어느듯, 은빛 물고기가 되어 소망으로 튀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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