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인가 군중 속을 걸어가거나, 사람들이 앉아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삶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고뇌와 아픔, 기쁨과 슬픔, 때로는 삶의 무게를 달아 보는 이상한 취미를 갖게되었다. 그것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사람의 뒷모습이야말로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대변하는 초상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이발소에 다녀온 남편이 기분이 몹시 좋아 보였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어느 때 보다도 말끔해 보이는 남편은 미소를 지으며 멋쩍게 말하였다. “글쎄,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고 있는데, 이발사가 머리를 깍다 말고 문득 손을 멈추고 거울 속에 비춘 나를 가만히 바라보지 않겠어…!”
“그래서요?” 홍조가 되어 가는 그의 얼굴 속에 나도 갑자기 흥분해지기 시작하였다. ” … … 연세가 드신 분인데, 나를 지긋이 바라보며 하는 말씀이 “혹시 선생님은 좋은 일을 하시는 분 같은데… 맞지요?’ 하지 않겠어! 그래서 내 직업을 밝혔지!”
“그랬더니요?” “그분이 그러는 거야. 자기는 수십 년을 남의 머리를 깎아주면서 생계를 삼다보니, 뒤에 서서 두상을 보는 것이 전문이 되었다는거야. 무엇인가 사회를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두상을 만져 보면 안다는 거지! 그리고 나쁜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나, 왠지 떳떳치 못한 일을 하는 사람의 머리는 깎다보면 다 안다는 거야!”
나도 이발사의 말에 동감하며, 자연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가정 문제상담소에서 오랫동안 가정문제를 다뤄 온 분의 비슷한 얘기를 전해준 일을 기억케 되었다.
그 분은 뉴욕에서 오랜 세월을 이민가정의 가정문제를 상담하였다. 그 중에, 특히 매맞는 여성들이나, 이유 없이 부인을 학대하는 남편들이 상담소에 찾아와 부인을 찾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면서 큰소리치고 돌아가는 뒷모습들이, 하나같이 불쌍해 보이고 처량해 보인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곤 “참 놀라운 사실은… 이 남편들의 뒷걸음 걸이가 어쩌면 그렇게들 똑같은지 알 수 없어!”하여, 나는 박장대소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에게 뒷모습은 사실 숨길 수 없는 또 하나의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은 화장을 하거나 꾸며서 어느 정도는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다. 웃고 싶지 않은 상태에도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미소를 상대방에게 나눠 줄 수 있으며, 미화된 언어나 교양으로 나를 감출 수 있다. 그러나, 문득 문득 스쳐가는 인간의 뒷모습은 어쩌면 가장 솔직한 인간의 언어이며 삶의 표현으로 우리 앞에 다가선다.
겨울이 깊어 가는 요즈음,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캐롤이 흥겹게 흐르고 있다. 선물을 사는 사람들, 크리스마스 전등을 하나씩 밝히는 이웃들 이 분주함 속에 사랑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고자 기도한다.
행여나 이 기쁨과 감사의 계절에 그들의 어깨 위에 먼지처럼 얹혀있는 고뇌와 아픔, 그리움은 무엇인지. 허영이나 다툼으로 지쳐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내 뒷모습 어딘가에 묻어 있을 삶의 피곤함과 성급함, 절망의 찌꺼기들이 나의 뒷모습을 초라하게 하지나 않는지 나의 모습을 자꾸만 되돌아 보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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