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여정 속에

우리는 지금 사막을 걷고 있는 중이다. 서서히 내몰리기 시작한 삶의 여정에서 언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지루하고 힘든 여정임에는 틀림없다. 우리 부부는 이 거칠고 회오리바람이 불어 치는 사막을 건너며, 서로를 일으켜 세워주며, 부둥켜 안아 주며, 행여나, 뒤쳐지지나 않을까, 서로의 눈물을 조심스러이 닦아주며, 부지런히 앞을 향해 걷고 있다. 아이들도 영문을 모르지만, 불평함 없이 잘 따라오고 있다.

사막에는 여기저기서 나타나 짖어대는 여우들의 짖어댐과, 금방이라도 물 것 같이 달려드는 저들의 험상 굿은 얼굴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문득 문득, 한밤의 곤히 잠들어 있는 영혼에까지 찾아와, 마구 짖어댄다. 그러나, 어느 주일아침 가족들의 예배시간에, 헨리 나우엔을 통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여우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마시오. 여우는 여우 굴속에서 살 수 있도록 저들을 보내시오. 그리고 산과 들을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오. 그 음성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 씻기시매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니라’ …우리는 분명 그 음성을 들으며, 매 순간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고자 애쓰고 있는 생명의 비밀을 찾아야 합니다”

아- 참된 생명의 잉태는 어제나 내일의 것이 아니라, 아픔과 씨름하며, 고뇌하는 그 순간에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가! 인생길에 언젠가 각자가 걸어야 될 사막이 있었음을 이제사 깨달으며, 여우의 음성에 매일 것인가? 하나님의 현존 속에 살 것인가를 좀더 지혜롭게 선택 할 수 있는 지혜에 다행히도 접근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가 사막을 건너고 있음을 안 이웃들은 여러 가지의 반응으로 접근해 온다. 어느 분은 아예 무관심하게 오히려 곁에 오기를 꺼려하기도 하고, 어느 분은 온갖 루머에 자신의 가십까지 부치어, 우리의 문제를 눈처럼 부풀려, 문제의 중심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사람들을 수긍시킨다. 그런가 하면,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이 얻어 낼 수 있는 모든 유익을 챙겨, 자신의 자리를 날렵하게 확보하는 이가 있다. 그리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다고 말함으로 인해, 나를 더욱더 절망적인 슬픔으로 가라앉게 한다. 그러나, 그 중에도 편지와 전화, 기도를 통해 “절대 기죽지 말아요!”하면서 용기를 주며 등을 두드려 주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우리의 처한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며, 자신의 아픔 이상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와 같이, 영혼에 하나님의 은총을 부지런히 찾도록 도와주며, 마시도록 부추겨 준다.

그러나, 비록 힘들고 괴로운 사막의 여정을 지나고 있지만, 감사 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찾게된다. 이 여정을 통해 내 믿음의 기초가 얼마나 연약한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며, 주님의 아픔이 무엇이었는지를 조금이라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남편의 신앙에 대해 더욱 더 신뢰하고 감사치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남들과 곁에 있는 나까지도, 오히려 분을 내며 원통해 하는 일들을, 본인은 오히려 초월 한 채로 새 일을 향해 묵묵히 달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절대 지난 일들에 매임을 당하지 않은 채, 악을 선으로 갚고자 애쓰는 그의 태도는, 나의 분노를 가라앉히며, 성급한 이들을 무안하게 하며, 믿음을 통한 가능성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를 실천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의 가장 위대한 설교와 실천이 이 사막의 한가운데서 선포되고 있으니!

이 사막의 여정 중에 우리의 친구 되신 예수님의 영원한 우정과, 불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의 깊이와 넓이를 갖고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 할 수 있음은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사람은 믿음이 중심에 설 때만이, 온전한 사람노릇을 한다는 이치와, ‘고난이 내게 유익이다’라고 고백한 사도바울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할 수 있는 사막의 여정은, 올해 우리 가정에 자축해야 될 제목 중의 하나이다.

  • 윤 완희 (목사관 서신, 1999년 11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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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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