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한 주간도 주님 안에서 평안하셨지요?
오늘은 자녀들과의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시간을 함께 갖아보고자 합니다. 자녀들- 특히,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이중문화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자녀와의 대화는 각 가정마다 잘 되어 가고 있는지요? 저희 가정에도 세 자녀들을 키우면서, 아이들과의 대화가 그리 쉽지는 않다고 솔직히 고백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는 아이들과의 대화시간을 가지려고 무척 노력하는 편입니다만, 그래도 어떨 때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될 때, 한집안에 사는 아이들이라도, 참으로 멀리 가 있구나 하는 생소함을 갖을 때도 있습니다. 이중문화 속에서 마음을 하나로 맞추며 살아가기가 서로 쉽지가 않치요.
며칠 전에 “섬기는 사람들”이라는 교단에서 나오는 격월 신앙지를 읽다보니,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글이 하나 실려있어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제목은 “어떻게 2세를 이해할 것인가?” 였는데, 미국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그레이스 박 목사님께서 쓰신 글이었습니다. 이글에는 어느 주일아침에 김장로님이라는 덕망있는 분이, 제임스라는 14살된 소년의 맞이하는 광경에서 시작됩니다. 김 장로님은 한국의 전통문화와 풍습을 잘 보존하여야 하며, 아이들에게 한국말과 예의를 잘 가르켜주어야 한다고 수시로 목사님과 교사들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아침에, 제임스는 귀에는 워크 맨을 끼고, 교회로 들어서다가 장로님을 발견하고는 “헬로우! 미스터 킴!”하고는 흔들흔들 거리며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목사님과 제임스의 부모님은 제임스가 참 버릇이 없고 어른을 몰라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그레이스 박목사님은 여기에서 1세와 1.5세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주요한 측면들을 몇가지 집어내셨는데, 일세들은 “고 정황 문화(High Context Culture)”인 반면, 이세문화는 “저 정황 문화(Low Context Culture)”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즉, 1세들이 갖고 있는 고 정황 문화는 말과 몸짓의 의미하는 바가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반면, 저 정황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이세들은 문자든, 언어든, 사용되어지는 단어와 표현의 내용이 그 의미 그대로 전달된다고 보고있습니다. 또한 1세들은 상층 권력 문화라 하여, 언제나 높고 낮음의 계급이 있으며, 힘을 쥔자가 특권을 누리며, 최대한 강자로 보여지도록 노력하며, 힘없는 자는 힘없음을 인정하고, 권위에 대하여 도전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2세들이 갖고 있는 대중권력 문화를 보면, 다수가 불평등을 시정해야 한다고 믿고있으며, 권위에 도전하고 다수가 그 권위를 획득한다고 합니다. 재분배되는 힘에 의해 구조가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대부분 또 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답니다.
또한 일세가 갖고 있는 다중 시간문화를 보면, 일세들은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으며,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일 시간 문화에 속한 이세들은 시간의 사용에 대해 예민하며, 시간낭비를 줄이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우며, 지각하는 것을 제일 싫어하고, 또 다른 사람이 늦을 때 매우 싫어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일세들과 이세들이 살아가고 있는 문화가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문화가 더 우세하거나 열세한 것이 아니라, 생활환경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는 것을 서로 이해할 때, 일세와 이세의 대화의 문은 쉽게 열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생각을 깔고 함께 하시겠습니다.
<마감하는 말>
말씀에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시 127 : 3-5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이세들은 이 땅에서 오래도록 살아가면서, 주의 영광을 나타내며, 저들에게 만 주신 특별한 은사를 통해 이루실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을 띤 자들에게 이중문화를 겪게하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요셉, 다니엘, 에스더… 우리들의 믿음의 선조들은 그 모진 이중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끝내 영광을 올렸던 것입니다.
요즈음에 이민 교회마다 이세 목화자들을 찾지 못해 애쓰는 모습들을 봅니다. 그런데, 그나마 있는 이세 지도자들이 한인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모습들을 또한 많이 발견케 됩니다. 이세들이 공부를 다 마치고 한인교회에 들어와 헌신하는데, 너무나 많은 불필요한 문화적인 장해가 그들을 괴롭히며, 방해한다는 말을 듣습니다. 청취자 여러분들의 교회에 오셔서 일하시는 이세 목회자들이, 일세 목회자들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목회에 전념할 때, 먼저 그들을 포용하고 이해하는 노력이 우리 속에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자 이제, 우리 가정에서나 교회서, 또는 한인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고, 배우려 노력 할 때, 자녀들과 부모세대간, 일세와 이세간의 불쾌감이나 적대감으로 인한 대화단절이란 결국 있을 수 없겠지요? 이 한주간에도 우리 모두 노력하여 대화의 광장으로 다 함께 나올 수 있는 시간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윤 완희, 미주 기독교 방송, “내 모습 이대로”, 11/3/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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