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세상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적과 같다. 책상머리에 앉아 컴퓨터의 키를 두드려, 전자메일을 발송하면, 몇 초안에 온 세상에 동시에 전해지니 말이다. 사람의 생각을, 어찌 그 높고 높은 곳에 계신 분이 아실까? 하며, 스스로 어리석은 인간의 자리에 눌러 앉아있기를 고집하던 나에게, 과학문명은 양파껍질을 벗겨나가듯이 신비의 세계를 하루가 다르게 벗겨나가고 있다. 과학자들조차도, 5년후의 세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며칠 전, 내게 도착한 무명의 콜롬바인 하이스쿨의 학생이 쓴 “시사해설” 이라는 편지 한 장은, 21세기를 앞둔 우리 모두에게, 시대의 종소리로 들려오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 역사의 모순이 있다면 높은 빌딩은 갖고 있어도, 저질의 성질을 갖고있으며, 넓은 하이웨이는 열려있지만, 좁은 견해와, 많은 소비 속에, 갖은 것은 없고, 많은 것을 사들여도, 즐길 줄을 모른다.
우리는 큰집을 갖고 핵가족을 이루며, 더욱 더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늘 시간에 쫓기며, 더 많은 지위는 있어도, 지각은 약해지고, 더 많은 지식은 범람해도, 판단은 약해지고, 더 많은 기대 속에, 문제들은 더욱 더 일어나고, 약품들은 수없이 개발되어도, 삶의 질은 낮아지고 있다.
우리는 온갖 것을 소유하고 있지만, 가치는 사라져 가고, 언어는 범람해도, 좀처럼 서로 사랑하기가 어렵고, 너무 자주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방법을 배우지만, 생명을 경시하며, 우리는 생명 연장을 위해 애써도, 오늘의 삶을 생각지 않으며, 우리는 달나라까지 오고 가도, 길 건너편의 새로운 이웃과 만나는 일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는 외계의 세계를 장악해 나가고 있어도, 내 속의 소우주는 점령치 못하며, 공기를 정화하려 하지만, 우리 영혼엔 공해가 가득하며, 우리는 원자는 분해할 줄 알아도, 편견만은 분해 할 줄 모른다. 우리는 높은 수입은 가졌어도, 도덕성은 낮아져 가고, 대량생산은 하여도, 질은 낮아지고 있다. 지금은 위대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라지 만, 인품은 작고, 경제수익은 높아도, 천박한 인간관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세계 평화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지만, 가정파탄은 끊임없이 일어나며, 레저는 많아도, 재미는 덜하며, 더 많은 종류의 음식 속에, 영양분은 낮아지고 있다.
이 시대는 두 사람이 벌지만, 이혼은 더해가고, 화려한 집에, 가정은 깨어져 가고 있으며, 시대의 쇼윈도는 점점 화려해 가지만, 정작 창고는 비어 가고 있다. 기술문명이 이 편지를 당신에게 전해줄 수 있는 시대에, 당신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만 될 시간이 왔다. 하나는 세상을 변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 그냥 삭제해 버리는 키를 누르고 말 것인가!“
나는 이 편지를 받아들고 한 동안, 충격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호수의 잔잔한 물가와 같이 평화스럽고 아름답던 아침에, 울려 펴졌던 무차별 총소리와, 비명, 죽음, 친구와 교사를 잃은 고통의 눈물 속에서 건져 올린, 이 한 장의 편지는 우리 삶의 현주소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흔히 말하기를 미국은 “사 잿기기 세상” 속에 우리 모두가 중독현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실지로, 주말이면 넘치는 쇼핑몰의 인파 속에서, 허기진 영혼을 채우려는 이들은 온종일 방황하고 있으며, 크레딧카드의 부채는 늘어 만가고, 사람은 점점 더 외소 해 져 가고 있다. 과학자들과 장사꾼들이 진열해 놓은 쇼윈도 속에, 젖어 들어가고 있는 우리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무명의 학생이 눈물로 쓴 한 장의 시사해설은 참으로 큰 도전이 아닐 수 없다.
– 윤 완희, 목사관서신, 11/11/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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