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이웃들이 있어 문상을 다녀오는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청천벼락 같은 젊은이들의 타계 소식과 조금 전까지도 멀쩡하던 사람이 몇 시간 후에, 아무런 인사나 유언도 없이 떠남을 맞게 될 때의 가족과 친척, 사랑하는 교우들간의 황당한 슬픔과 허무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태어 날 때는 순서대로 왔어도, 주께서 부르실 때는 누구든 먼저 가야 만 하는 것이 우리 인간사인 것 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 한국에서 이웃집 할머니가 장롱 속 깊은 곳에 미리 준비해 숨겨두신 수의(壽衣)를 자랑(?)이라도 하듯이 꺼내어 보여주던 것을 본 기억이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흰색 비단 치마저고리를 하얀 보자기에 곱게 싸시어서 장롱 깊은 곳에 다시 넣으시면서, 곧 하늘나라에 가실 날을 기다리신다는 말씀에 왠지 무섭기까지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엔 영생에 대한 준비가 전혀없었기에, 죽음 이후엔 깜깜한 어둠 만이 웅크리고 있으리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와보니, 죽음이란 노인들 만이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누구나 이 죽음을 준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오는 순간이며, 그 순간이 올 때는 아무런 후회나 주저함 없이 모든 것을 움켜쥐었던 손을 펴고, 홀가분하게 홀로 떠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인 교인 중에 클리프 쿠벨(Cliff Quibell)이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에 교회와 사회를 위해 많은 봉사를 하셨으며,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홈레스들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그 분은 떠나시면서 자신의 눈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었으며, 육신은 화장을 한 후에, 재가 담긴 상자를 교회 옆 뜰악에 묻히었습니다. 교회 뜰악에는그 분뿐 만이 아닌, 여러분들의 상자가 묻혀있습니다.
지난 3월 7일에 90세로 타계한 안과 전문의이자 한글 기계화 운동의 기수였던 공병우 박사님의 유언을 읽으면서 그 분의 홀가분 함에 충격과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유언에는 재산분배는 언급치 않고 유형 무형의 재산이 있다면, 신체 장애인들 중에 특히 앞 못보는 이들을 위해 복지사업을 위해 처분할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또한, 박사님은 자신의 시신을 사용 가능 할 경우에 다른 환자들을 위해 장기등을 적출해 기증할 것이며, 나머지 시신은 병리학 또는 시체 해부학 교실에서 실습용으로 이용하도록 의과대학에 제공 할 것이며, 그렇치 못할 경우엔 화장 또는 수장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하면 최소 면적의 묘를 쓰되, 매장시에는 새옷을 갈아입히지 말고 입은대로 가장 값싼 널에 넣을 것이며, 친척 친지에게 부음을 1개월 후에 알리라 하였습니다. 평생을 후회함 없이 사신 분답게, 떠나시면서도 아무런 꺼리낌이나 회한이 없으신 참으로 멋진 유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의 자손들이 그 유언을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알지 못해도, 그토록 떳떳하게 후손들 앞에서 떠날 수 있음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 것 만은 틀림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열려진 신앙과 마음으로 하루를 살고 있으며, 이 땅을 떠날 때에도 그처럼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지 다시한번 생각케 봅니다. 평소에 제 자신은 깨어있는 사람으로 착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사후에 장기를 떼어 필요한 환자들에게 주는 일까지는 허락했어도, 의학실습용으로 내어 준다는 것 까지는 아직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흙임을 아직도 인정치 못하고, 흙이 아닌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착각 속에 있는 것이지요.
우리에겐 오늘 하루가 이 땅에서의 마지막 날이 된 것처럼 최선을 다하여 살지 않으면, 결국에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남은 이들에게 남기고 가게 될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케 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이 있으매, 최선을 다하여 내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이웃을 받들고, 가족들을 사랑 하는 일들이 평범한 일 같아도, 그 속에 영원을 향한 걸음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생각 할 때, 오늘 하루가 얼마나 귀한 날들인가를 감사케 돕니다.
– 윤 완희,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