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에서 흔히 쓰는 말 중에 “여자가 뭘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온지 어언 15년이 되는 요즈음에 그런 말을 지금도 쓰는지는 모르지만, “여자가 뭘해?”라는 말은 사람의 존재자체를 부정해 버리는 말같아 신앙적으로도 어긋나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동안 여인들은 사회적인 면이나 역사적인 면에서 늘 소외되고, 약한 존재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시대의 상황에 따라 때로는 소외되고 연약한 모습 속에 여인들의 역사는 흘러왔어도, 말없이 보이지 않게 세계를 움직이는 것은 여인들의 꿈과 기도가 아니었나 생각케 됩니다.
며칠전에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그녀가 이민 오던 첫날부터, 수년동안 신앙생활을 함께 나누던 성도였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늘 뵙고 싶고 궁금하면서도 전화 한통드리지 못했군요!” 그녀의 맑은 음성 속에서, 사랑하는 성도의 삶이 요즈음엔 어떠한지 금방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모님! 그이가 변했어요! 요즈음엔, 제가 교회가고, 집에서 성경읽고, 찬송하는 것을 마음껏해도 되요! 이제는 신앙에 대한 대화도 함께 나눌 때가 있으며, 그이가 시간이 허락되면 교회도 나간답니다. 그리고, 애들에게도 무척 관심을 갖고, 작은 아이 목욕도 가끔 시켜줘요. 이제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와 가정의 중요성을 아는 것 같아요! 때로는 저에게 감사하다는 표현도 한답니다. 이젠 아무 것도 바랄 것이 없이 기쁘고 행복해요. 늘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그녀의 “그이가 변했어요!” 하는 그 한마디에 저는 믿기지 않아 “정말이야?”하고 재차 확인하며 기쁨의 눈물이 왈깍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변하다니? 아! 사람은 변할 수 있구나! 그래! 사람은 할 수 없으나, 우리 주님은 하실 수 있지!’ 저는 그녀와 전화를 끊고서 감동에 젖어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저 자신도 생각하시를
“저 사람 만은 않돼!”하고 포기했었기 때문입니다,
첫 인상에 몸이 몹시도 허약해 보이던 성도님이 어린 두 딸을 데리고 한국에서, 남편을 찾아 미국에 온것은 약 5년전 일이었습니다. 결혼후, 늘 외국에 돌아다니던 남편과 더이상 떨여져 살면 않되겠다는 시댁 어른들과 친정부모의 판단 속에, 그녀는 내키지 않는 미국걸음을 하였던 것입니다. “어머니! 저는 이곳서 시부모님과 사는 것이 남편과 함께 사는
것보다 좋아요!” “아무리 좋든 싫든, 네 남편이고 아이들의 아버지야. 가서 행복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거라!” 친정어머니의 거듭된 충고와 시댁 부모님들의 권고에 의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이민 오게 된것입니다.
결혼 전에 친구의 소개로 만난 남자의 잘생긴 겉모습과, 남자다워 보이는 성품에 반해(?) 결혼하고 보니, 그 남자다운 성품은 폭력으로 변해, 밤이고 낮이고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알고보니, 남편은 이름난 동네의 주먹꾼이었습니다. 후회하였지만, 이미 어찌 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거친 성품을 아는 시 부모님들은 새 며느리를 친딸보다도 더 아끼고 사랑하면서, 늘 위로하였습니다. 오히려, 남편과 있을때 보다는 시부모님의 곁에서 사랑받고 있는 것이 더 행복했습니다. 남편은 어느날, 돈벌러 외국에 나가보겠다며 홀연히 짐을 꾸려 집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몇년에 한번씩 한국방문을 하는 남편과의 잠시 상면 속에서, 오히려 더 낯설고 거칠어진 남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혼하고자 몇번이나 노력했으나, 번번히 실패하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불안한 마음으로 미국에 도착한 그녀와 남편의 만남은 물과 기름처럼 겉돌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랜동안 혼자의 몸으로 객지생활을 하던 남편은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아이들과 부인을 구박하며, 과거의 실력행사(?)를 거침없이 해대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던 아이들도, 아버지가 집에 들어 오기만 하면, 슬슬 눈치를 보며 피하였습니다. 남들처럼 직장을 나가보고 싶었지만, 남편이 허락치 안았습니다. 그런 와중 속에, 성도님에게 위로와 평안과 용기를 주는 곳이 하나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그녀와 함께 함을 깨달으며, 그녀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자신의 고통과 답답함을 하소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예전에 교회는 새옷을 입고 자랑하는 곳으로 여기던 그녀였으나, 이제는 교회서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답답함을 고하고, 기쁨에 충만하여 집에 돌아오면, ‘여자가 왜 쓸데없이 돌아다니냐’면서, 사정없이 찬송가와 성경책이 집 밖으로 수없이 찢긴채 내동댕이 쳤습니다. 한국서 사왔던 그릇들조차 거의 박살이 나서 쓸만한 것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리스도의 형상이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그녀는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는 일’ 이 남편을 끝까지 포기 하지 않고 사랑하는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가슴에 사랑의 불을 간직한 그녀는 끈질기고 강하였습니다. 그 인내가 얼마나 강한지 때로는 미련해 보이기 까지 하였습니다. 그녀는 아픈 가슴을 찬양으로 늘 채우고, 말씀으로 늘 다지었습니다. 그리고, 늘 부지런하며 무슨 일에든지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며 명랑하였습니다. 드디어, 성도님의 흔들림 없는 신앙의 반석 위에, 그 거칠었던 남편, 아니 상처 받은 속사람을 치료받지 못하고 살아가던 한 인격체가, 참다운 사랑과 안식의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데 승리하였던 것입니다.
“여자가 뭘해?” 그말을 신앙 안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며, 세계를 믿음으로 움직인 여인들의 발자취 속에 이뤄진 꿈들이 여기저기서 오늘도 아름다운 꽃봉우리를 터트리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여인들은 아직도 연약한 존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슴에 그리스도의 불을 가진 여인들의 사랑과 기도는 상처받은 한 인격체를 치료하고, 실패한 가정을 구하며, 그 위에 견고한 미래가 열리는 것을 보게됩니다.
– 윤 완희 (尹 完 姬), <1995년 6월12일>

You must be logged in to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