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분주하게 지내고보면, ‘아! 오늘은 하루를 알차고 의미있게 지냈구나!’ 하고 뿌듯한 기쁨과 보람 속에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있는 반면, ‘오늘 내가 무엇을 했지?’ 하고 오히려 의아해 하는 날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은 하루를 알차고 의미있게 지냈구나!’ 하는 날들을 추려내어, 무엇이 내게 그토록 기쁨과 만족을 주었던가?하고 그 의미를 따져 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내게 잘했다고 칭친하실 수 있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날들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의문입니다. 사람마다 하루의 삶을 추구하는 그 가치와 모양이 다를 수 있습니다. 평화가 없는 목적, 이웃과 고립된 성공, 재물의 노예가 되어 벌어 들인 소득, 몸과 영혼을 희생하면서 이룩한 성취등은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를 주는지 나자신에게 다시금 묻게 됩니다. 한 순간 가치없는 것에 가치를 두고 판단한 것 때문에 내 인생을 버리는 것 뿐만이 아니라, 내 자녀, 이웃들까지도 평생 아픔을 안고 사는 일들은 얼마든지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의 외조부는 6.25동난때, 이북의 황해도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온 가족을 데리고 이남으로 피난길에 오르셨는데, 배를 타기 직전에 말씀하시길 ‘집안에 중요한 것을 가지러 금방 갔다오겠다’며, 큰 아들을 데리고 가셨답니다. 그런데, 배가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타나지를 않으셨습니다. 결국 외할머니와 목사님의 어머니만 피난민들의 물결에 휩싸여 피난길에 오르신 것이 결국 40여년을 생이별 속에,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아들을 그리며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어느 분이 병상에서 고백하기를, 자기는 남보다 더 잘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남이 잘때, 자기는 잠을 자지않고 일만했는데, 어느새 몸에 병이들어, 살만하니까 죽게되었다며 한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삶은 참으로 열심히 잘살기 위해 일했습니다. 아이들하고 공원에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해변가에 마음놓고 휴가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내가 쉬면 누가 밥먹여줍니까?”였습니다. “집을 나가면 당장 밥을 사먹어야지요, 잠을 자야지요. 차도 먹여야지요. 집에 있으면, 그 돈이 그냥 다 모이잖아요?” 교회에 나오라는 권유도 한마디로 딱 거절했습니다. “일주일 내내 일했는데, 하루 만이라도 시원한 소파에 누워 얼음물이라도 마시며, 몸을 쉬어야 만이 또 나가서 일주일을 살아가지요.” 그분은 자신 뿐만 아니라, 부인과 자녀도 일외는 눈을 돌리는 것을 허락치 않았습니다. 가난한 친척들이 오랫 만에 찾아오는 것도 부담이 되었습니다. 일만하는 그에게 친구들도 다 떠나갔습니다. 그분은 어느정도 돈을 모아, 꿈에 그리던 대궐 같은 집을 샀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대학으로 떠난 후였습니다. 그림 같은 집에, 폭염이 쏟아지는 여름에는 에어콘 한번 용기있게 틀지 못했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집안에서 파커잠바를 입고, 여름생각하며, 겨울을 오들오들 떨며 보내었습니다. 차의 번쩍이는 광기가 사라질까봐, 마음놓고 산과들을 달려보지 못했습니다. 최고급 이테리 가구들과, 한번도 써보지 않은 불란서에서 왔다는 챠이나 셋트 만이 그 집안에서 번쩍이고 있었으나, 상하고 깨질까봐 보기만 해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사업에 여유가 생기니 시간이 났습니다. 부인과 함께 그동안 못했던 여가라는 것을 즐겨보기로 했습니다. 처음으로 해가 쨍쨍 쬐이는 들판에 나가, 골프를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갑자기 햇볕 속에서 골프치는 재미에 살다보니 어느날, 혈압이 올라 중풍이 갑자기 닥쳤던 것입니다. 입과 손발이 마비가 되어 이제는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병상에 누워 자신의 삶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그동안 기를 쓰고 무엇인가 잡으려고 잡긴 잡았는데, 그것은 바람이였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바람속에, 그의 참다운 꿈도, 청춘도, 자식들도, 친구 친척들도 모두 사라진 후였습니다. 남은 것을 챙겨보니, 대궐같은 덩그란 집과, 이태리에서 온 고급가구, 불란서에서 왔다는 챠이나, 차고에 있는 고급차였으며, 평생을 함께 한 부인의 찌글어진 모습이였습니다. 바람의 뒷모습 속에 어둠의 그늘이 그를 향해 손벌리고 있음을 본 그는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이세상에는 “밥 먹고 사는 일보다도 귀한 일”이 있음을 희미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했다는 고백이였습니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너무 늦어, 그가 바람이 아닌 것을 찾을 여유를 주지 않았습니다. 일년 후, 그는 바람 속으로떠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오늘도 내 생애에 있어 의미를 갖고 달려가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아니면 바람 뿐인지 어찌 우리가 감히 알 수 있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 중심으로 이웃과 사랑하며 살지 않으면, 우리의 삶은 결국 바람을 잡다가 마는 결과를 안게 됩니다. 평생을 바람 만 잡다가, 막상 하나님과의 계산해야 만 될 그 정점에서 내놓아야 될 아무 것도 내게서 찾지 못했을 때 우린 얼마나 당황하며 후회하겠습니까? 아무리 이태리 응접셋트와 침대가 멋지고 아름다웠어도 하나님의 창고에 어찌 들일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호화로운 불란서에서 만든 디너셋트가 좋다한들 그것은 한갖 나무와 흙일뿐입니다. 사람이 일속에서 열심히 사는 일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일에 대한 하나님 안에서의 분별력이 없을땐, 우리의 한평생은 바람을 잡다가 말게됩니다. 오늘도 행여 바람을 잡고 있지는 않는지요?
– 윤 완희, 尹 完 姬 <1995년 7월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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