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기도회는 하나님이 우리 한민족에게 주신 특별하신 영적인 만남의 시간입니다. 뉴욕의 후러싱지역에 한국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동안 각 지역 경찰들이 소동이 난일이 있다고 합니다. 이상하게도 새벽 5시 무렵이면, 가방을 든 동양여인들이 어딘지 모르게 바쁘게 몰려 갔다가 돌아 가는 모습이었습니다. 순찰을 돌던 경찰들은 이상한 예감에 이 여인들을 따라가 보니, 한결같이 교회간판이 있는 곳으로 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특별한 부흥회 기간 만이 아닌, 사시사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그 행렬은 골목마다 이어지고 있었기에 한국인들의 신앙심에 새삼 놀랐다는 이야기입니다.
새벽 시간의 목사관도 하루 중, 가장 바쁜 시간임에 틀림없습니다. 새벽을 깨우는 요란한 시계소리와 함께 5시면 샤워가 끝나고 옷을입고, 교회를 향하여 집을 나서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6시에 있는 성경읽기와 찬송, 기도를 마치고 바로 병원에 있는 환자를 찾아가 병문안하고 집에 돌아오면 오전 10시가 됩니다. 그 시간에 돌아와 대하는 아침식사는 늘 우리에게 왕성한 식욕을 불러 일으킵니다. 요즈음엔 아이들이 방학이라서 아침시간에 서두름없이 느긋하게 성전에서 말씀읽고 묵상하며, 기도할 수 있어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게 된답니다. 땅이 숨을쉬듯이 나와 하나님과의 기도를 통한 호흡은 하루의 삶을 윤택하게 할 뿐 아니라, 깊은 평화 속에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 속에 하루의 삶의 방향을 움직일 수 있게됩니다.
우리는 기도 속에 수많은 사람들과 만납니다. 그리고, 여러 곳을 여행하며 그들의 꿈과 비젼을 함께 나눕니다. 때로는 육신의 피곤함 속에 엎드려 졸기도 하고, 기도 줄이 잡히지 않아 중언부언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날들에는 늘 주님이 만나주시고 함께하심을 늘 체험합니다. 새벽시간이면 늘 많은 것을 요구하며 졸라대는 저에게 주님은 때로는 침묵으로 말씀을 대언하시기도 하고, 때로는 성경말씀으로, 때로는 마음에 깊은 평안으로 저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주님이 저에게 강력히 요구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인내를 요구하실 때입니다. 냄비에 올려놓은 물처럼, 금방 끓었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저의 감정적인 습성을 고치기 위하여, 주님은 오랜 침묵을 통하여 저의 기도가 반석에 설수있도록 도우시기도 합니다. 아직도 저의 서툰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얼마나 많은 응답과 기적을 내 삶에 베푸셨는지 모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이웃의 심령 깊은 곳에 숨어있는 아픔을 하나하나 만져 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어느 기도회의 모임에서 전혀 모르는 이와 함께 두 손을 마주잡고 기도해 본적이 있습니다. 잠시의 무릎꿇음 속에 저는 그의 심령 깊은 곳에
내재해 있는 삶의 뭉치고 시달린 아픔들을 만져 볼 수 있었습니다. 상대방의 갈갈이 찢기고 멍든 아픔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저는 목이 매인채 눈물을 흘리며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도 후에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치료되고 온전케 됨을 똑같이 느끼며, 얼싸 안은적이 있습니다.
기도는 슈퍼 하이웨이보다도 빠른 스피드가 있습니다. 현대를 정보 슈퍼 하이웨이의 시대라 하여, 국가와 국가 간의 보이지 않는 정보전쟁이 대단합니다. 어떤 정보든지 세상에 알려지기만 하면 그것이 돈을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정보는 현대의 빵이며 쌀이라고 불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슈퍼 하이웨이보다도 더 빠른 기도의 스피드는, 눈만 감으면 세계 어느 곳은 물론이요,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전, 새벽에 엎드려 기도하는 성도들의 기도의 향기가 왠지 뉴욕하늘 곳곳으로 퍼져 올라감을 생각하니, 절로 기쁨이 솟구칩니다.
– 윤 완희,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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