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어떻게 해야 거룩한 삶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종종 내 마음 속에 와 닿는 질문이다.

과거 사막의 교부들처럼 모든 것을 뒤로하고 광야로 나가 종일 묵상과 기도로 사는 것만이 최상의 거룩한 삶이라고 본다면, 아무도 현실 속에서 거룩함을 이루고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삶의 현장에서 관계된 가장 가깝고 먼 사람들, 우연찮게 만나는 누군가를 진솔하게 사랑함으로 조금은 거룩한 삶을 향해 한 걸음 나아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몇 년 전, 어린 손녀딸이 말을 배우기 전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수도 없이 “할머니는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던 아이 는 오히려 낯설어 할 뿐이었다. 나는 궁리 끝에 손가락을 사용해, 싸인 랭귀지로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라고 가르쳐 주었다. 아이는 그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올려 서툰 동작으로 흉내 내면서 나와의 사랑의 교제를 시작하였다. 그 후로 멀리서 전화기로 음성만 들어도 아이는 손가락 세 개를 들어 올리며, 할머니와의 기억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교우들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때와,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처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아무리 들어도 싫증 나거나, 짜증이 나질 않는다. 오히려 삶 가운데 힘겨운 절망의 벼랑 끝에 섰다가도 나를 끊임없이 사랑해주고 있는 이들과, 또한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위로와 희망의 끈을 움켜잡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사랑은 마치도 언 땅에 스쳐오는 봄의 훈풍처럼, 눈물과 고난을 헤쳐가게 하고, 희망과 소망의 싹을 틔게 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누군가에게 진심을 다해 말할 때에 는 당신과 좋은 시간을 보낼 뿐만이 아니라, 당신이 어려울 때, 아플 때, 슬플 때, 실패를 했을 때에도 나는 당신과 늘 함께 하겠습니다라는 무언의 약조가 있다. 또한, 더 깊은 내면에는 내가 인간적인 한계에 부딪혀 당신을 더 이상 사랑 할 수 없을 때에는, ‘신의 사랑에 힘입어 당신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며 책임을 지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숨어있다.

2월은 사랑의 달이다. 상점 곳곳에 붉은 하트 모양의 쵸코렛과, 장미꽃들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고백할 때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재의 수요일(2/17)을 시작으로 사순절의 영적순례가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오심과 고난, 죽음과 부활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묵상하며, 흙으로 돌아갈 내 자신이, 고귀한 사랑을 위해 이 땅에 창조되었음을 일깨울 때이다.

그 사랑은 달콤한 쵸코렛 사랑이나, 꽃처럼 곧 시들어 버릴 사랑이 아닌, 책임과 열정, 눈물과 아픔이 있는 사랑이다. 그 사랑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어왔고, 내가 죽은 후에라도 변함없이 있어줄 영원불변한 사랑이다.

오늘도 ‘거룩한 삶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내 마음을 하나님이 소유하도록 얼마나 내어드렸었는지 성찰게 된다. 그 분이 나를 차지하지 않고는 나는 결국 누구도 진정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 윤 완희, (신앙칼럼, 2010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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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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