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따가운 햇살아래 익어가는 씨앗들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미래 속에 맺어지고 있는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내일이라는 씨앗을 한알씩 한알씩 마음가운데 매만져 보게된다. 우리에게 내일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내일의 씨앗을 나무나 꽃과 같이 우리들도 일상 속에서 맺어 나가며,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은 정녕 눈물겨웁지 않을 수 없다.
어느날, 우리 가족이 볼링장엘 가게되었다. 운동장 만한 넓은 볼링장엔 어린자녀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이 레인마다 가득 채운채, 환호성과 박수소리, 핀들이 넘어지는 경쾌한 소리들로 조금은 소란한 가운데 있었다. 우리 가족들도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옆의 레인에 새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가만히 보니 젊은 백인아빠가 어린 딸들을 데리고 깨임을 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의 나이는 8, 9세의 소녀들이었는데, 그 중에 겨우 새살이 될까말까한, 머리가 까만 동양계 어린 소녀 하나가 끼여있었다. 이 아이는 아마도 입양한 아이로 보였다. 젊은 아빠는 한 손에 빨강 색의 볼링을 잡고, 한 손으로는 어린 딸을 감싸 안다싶이하여 저만치 서있는 핀들을 향해 공을 힘껏 밀어넣토록 부추기었다. 어린 소녀는 아빠의 품에서 처음엔 수줍은 듯이 주춤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두 손으로 아빠의 손에 끼어져있는 공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볼링 볼은 서서히 레인을 따라 굴러가다가 두 서너 개의 핀들을 맞추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채, 소리를 지르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고 팔짝팔짝 뛰었다. 물론 아빠는 세 손가락이 끼여있는 공을, 아이가 모르게 힘껏 밀어넣어 준 것을, 어린소녀는 감히 알수가 없는 일이었다.
오늘 비록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맞이하며 씨름하고 있을지라도, 내일이라는 풋풋한 생명 속에 살아있는 소망들을 붙잡을 때, 우리는 오늘의 싸움을 선한 싸움으로 이끌 수 있는 일이다.
— 윤완희, 9/7/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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