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며

올해 저희 가족은,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온가족이 함께 여행할 기회가 앞으로 쉽지 않을것 같아 여행 계획을 세워 이곳 저곳을 돌아보며 가족간의 돈독한 사랑과 영육간의 쇄신을 갖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낯선이들의 틈에 끼여, 낯선 환경과, 억양, 그 지방만의 특이한 모습 속에 자연과의 만남은 늘 우리를 새롭게 하며, 자연스레이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일은 늘 유쾌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노트 한권에 여행의 목적지와 마일 계획을 잘 짜서 나름대로 즐거운 여행을 기대하며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여행 중에 늘 유쾌하기만 하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한가족 5명이 차안에서 10여시간씩을 견뎌내는 일과, 24시간을 함께 행동한다는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좁은 차안에서 갑자기 막내가 누나들에게 자리를 넉넉히 양보하기를 꺼려하거나 불평이 시작되면, 모두가 참견을 해야되었으며, 여행길에 더위와 피곤에 지친 식구들은 서로에게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또한, 이 목적지에서 저목적지로 자리를 옮기려면, 각자의 짐보따리들을 챙겨야만 되는데, 행동이 평소에 느린 아이는 항상 뒤쳐지기 때문에 나머지 식구들이 기다려주는 인내를 터득해야 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때면, 각자의 입맛의 취향대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찾아가는 일들과,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없어도 시간절약과 경제적인 사정으로 서로 양보해야만 되는 원칙을 고수하기도 했습니다.

한가족끼리도 조금만 불편하면 서로가 참지 못하고 불쾌한 마음을 서로에게 품고지내는데, 남의 입장을 헤아리며 당연히 돌보며 살아가는 일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의 참견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함을 생각케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어쩔 수 없이 호텔과 식당을 찾기도 했으나, 불편하더라도 자연 속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버너에 밥을 지어먹으며 마음껏 자연의 맑은 공기를 들여마시는 일과, 계곡의 물속에 발을 담가보고, 새들의 청아한 음성을 확인하는 일은 여행에 있어서의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우리는 먼길을 달리고 달려 스모키 마운틴 계곡의 어느 캠프장에 들어가 여정을 풀었습니다. 뉴욕에서 약 600여마일의 거리이며, 국립공원의 하나인, 노스 케롤라이나의 자랑인 스모키 마운틴(Great Smoky Mountains)의, 체로키 인디안 마을(Cherokee Indian Reservation)이 있어, 사시사철에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임없이 닫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차뒤에 싣고 온 텐트를 꺼내어 아이들과 함께 단숨에 텐트를 세우고, 비닐 큐숀에 공기를 불어넣으니, 조금 전까지도 평평한 잔듸밭 위에 피크닉 테이블 하나 만이 덩그럽게 놓여져 쓸쓸하기 그지없던 자리에 금방 활기가 부어졌습니다. 천하의 아름다운 자연이 사람들을 맞이함으로 그 아름다움의 생기가 더욱더 활력있음과 같았습니다. 또한 얼마전 까지도 사람의 웅성거림과 모닥불이 벌겋케 타오르던 자리에, 텐트와 사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시커멓게 타다남은 숫덩어리만이 쓸쓸히 남아 사람이 다녀간 흔적을 말해주기도 했습니다.

여행 중, 하루 하루의 열기는 너무나 빨리 달아나 버리고, 우리는 언제나 다시 짐을 꾸리어 다음 장소를 향해 발길을 옮겨야했습니다. 어제 못다한 사랑을 내일로 미룰겨를이 없었습니다. 내일은 내일 마련된 사랑과 뜨거운 생명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어제의 남은 것을 짐보따리에 다시 끌어 넣을 수도 없었습니다. 어제 그자리에서 참지 못하고 불평했던 일들과, 화를 내버리고 난 후의 씁쓸 함은, 영혼 안에 도시의 공해처럼 떠돌았습니다.

여행을 떠나던날, 어느 권사님이 주신 물김치 한병을,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워가면서 싣고온 보람이 있어, 식사 때마다 꺼내놓고 먹으며 “우리 하나님, 자상도 하시지!” 라고 감탄을 연발하며 김치와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하는 우리에게 둘째 아이가 말하였습니다. “엄마! 김치냄새는 왠지 마음을 평안하게 해줘요. 아무리 낯선 곳이라도 김치 냄새가 나면, 집에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식구들은 그 말에 동의를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은 독특한 한국인의 문화와 냄새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이 땅에 심는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지으신 세계 속에서 거룩한 향기를 맡으며 내 생명의 뿌리가 그 분 안에 심겨져 있음을 재확인할 때, 우리에게 물밀듯 마음의 평화가 함께 하였습니다.

목사관을 잠시 비우며, 우리와 함께 깊은 사랑의 고리를 연결하고 있는 성도들과 이웃과의 잠시 헤어짐 속에, 우리의 끈끈한 사랑의 줄은 얼마나 강한 것이었는지 새삼 설레이며 만날 날을 기다렸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워 하기도 했고, 제단 앞에 무릎꿇고 성도 한분 한분의 기도제목들을 위해 기도하며 흘린 눈물들은 결국 헛되거나 가치 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주님은 위로해 주시며, 우리의 존재는 성도님들 속에 있음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느 낯선 곳에서 고단한 몸을 뉘이고 있던날, 새벽녁에 주님은 내영혼을 깨우시며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것이 차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를 하지 않으시지…!”

오랫동안 비어있던 목사관을 열고 들어 설때의 환희와 기쁨의 안심 속에, 한권의 노트 북에 기록되었었던 여행계획을 책꽃이 한곁에 꼽아 넣으며 여행이란 결국 영원 할 수 없다는 것,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오듯이 우리의 본향으로 가야 만 될 때가 있음을 기억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이란, 내가 살고있는 이자리가 얼마나 귀하고 값진 자리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또 하나의 선생님인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尹 完 姬, <1995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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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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