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 주 컬럼바인 고등학교서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16명의 무고한 목숨이 사망한지 근 한달 동안, 우리 아이들의 학교에서도 그 공포의 여파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고등학교 11학년인 둘째 아이의 학교는 그 동안 네 번씩이나 폭탄장치가 되어있다는 거짓신고로 인해, 수업을 중단하고 전교생들이 빗속에서, 또는 땡볕에서, 안전 조사가 끝날 때까지 서너 시간씩을 기다렸어야 되는 일이 있었다. 또한 중학교 8학년에 재학중인 셋째의 경우에도, 그 동안 세 번씩이나 수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수업에 말할 수 없는 차질과 정신적인 피해를 갖게됨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또 다시 죠지아 주의 커녀스 헤리티지 고교의 15세 된 학생이 여자친구로 부터 결별을 당하고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라는 이유로 급우들에게 마구 총질을 한 사건(5/22/99)은, 우리 모두를 경악케 할 뿐 만이 아니라 학교 가는 애들의 안전에 대해 심히 염려가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에는 “학교에 가서 열심히 공부 잘해라!”며 아이들을 향해 말했는데, 요즈음에는 “총맞지 않고 집에 무사히 돌아오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게 된다. 마치도 과거의 서부활극 시대로 돌아가 있지 않는가 하는 착각을 갖고 살아가게 됨은 나만의 혼동일까?
서부 시대에는 총을 잘 쏘는 특별한 사람을 총잡이라 불렀다. 이 총잡이들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청바지를 입은채, 시가를 입에 물고 여유있게 나타나, 악한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했었다. 그러나, 현대의 총잡이들은 언제 어느 때, 누가 총잡이로 변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할 지 모르는 불안한 시대에 살고있다. 어느새 갓난 아기 때부터 눈만 뜨면 T.V와 께임을 통해 총을 쏴대는 것이 몸에 익도록 배우게 되니, 누구나 총잡이가 되는 것이다.
지난 5월 20일, T. V 프로그램인 20/20를 통해, 너서리에 있는 3살에서 4살짜리의 아이들이 권총을 어떻게 다루는 가를 실험하게 되었다. 서너 자루의 권총을 안전장치를 한 후에 아이들의 장난감 상자 사이나 선반 위에 숨겨두었다. 그리고 40여명의 아이들을 실험해 본 결과, 이 아이들이 모두 권총을 다룰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가짜 총알과 진짜 총알을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에 진열해 두고 보니, 이 어린아이들이 진품을 정확하게 구별하여, 총알을 장진 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 아이들은 서로 총을 쏘고 맞고 죽는시늉을 하며, 911에까지도 전화를 하는 등의 너무나 능숙한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고 있었다.
어른들의 세계는 어떤가?
지난 3월에 플로리다에 살고있던 어머니와 딸이 언쟁을 벌이다가, 화가 난 어머니가(셜리 이건, 68세) 장롱 속에 숨겨두었던 38구경 권총을 꺼내어 딸(조젯 스미스, 42세)을 향해 쏘았다. 이유는 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딸은 어머니를 양로원에 보내야겠다는 계획을 말하게 되니, 어머니는 화가 울컥 난 것이었다. 사람이 화가 나면 무슨 짓을 못하랴 만은, 그만 총알이 딸의 목을 관통하여 척추를 손상시키고 말았다. 목숨은 건졌으나, 전신마비의 거의 식물인간이 된 딸은 ‘죽을 권리’를 법원에 신청하여, 결국 산소호흡기를 제거하게 되고 말았다. 그런 딸의 죽음을 바라보아야 만 했던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 비통했을까 짐작케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권총을 구입할 때, 그 총으로 인해 자신이 상하거나, 사랑하는 이들을 상해 할 것이라곤 결국 생각지 않는다. 다만 호신용이나, 방어용, 사냥용, 장식용으로 그냥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총의 목적은 살생에 있다. 우리는 이미 T.V나 영화, 소설을 통해 숙련된 총잡이가 되어있기 때문에, 언제 어느 때 우리 자신이 총을 쏘고 맞으며, 분노의 마지막 분출 도구로 사용케 될지 누구도 보장 할 수 없다.
전쟁시도 아닌데, 우리 자녀들이 폭탄과 총격 위협에 오늘도 수업을 제대로 못하고 길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오늘의 이 세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정녕 상관 없는 일일까? 이 치열한 전쟁의 한 가운데서 우리들의 에너지는 지금 어디에 소모되고 있는가? 오늘의 방관자는 결국 역사의 방관자라는 질책을 주님께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음을 깊이 자성케 된다.
– 윤 완희, 5/25/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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