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을 잘하는 젊은 부부가 있었다.
한달 동안에도 몇번씩 “같이 도저히 못살겠다”고 눈물을 펑펑 쏟는 성도님을, 때로는 위로도 하고 야단도 치고, 권면도 하면서 거의 수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어쩌다 주일에 부부동반하여 교회에 나타나면, 나는 뒷자리에 앉아 꿀먹은 벙어리처럼 혼자 싱글벙글 하기가 일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이 변두리 좋은 지역에 아름다운 집을 사서 이사 들어가게 되었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새 집에 들어갔으니 이제는 오순도순 잘 살겠지 했는데, 이사가는 날도, 집정리 하면서도 이들 부부는 계속 보따리를 싸겠다며 나를 위협(?)하여 가슴을 철렁이게 만들곤 하였다. 알고 보면, 사진틀 벽에 거는 것, 찬장에 그릇 올려놓는 것, 마당에 씨 뿌리고 꽃 심는 것등 모두가 다툼으로 시작해 끝내는 애꿎은 목사관 전화 벨만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찔끔거리는 성도 님의 전화가 통 오지를 않았다. 주일날, 부부가 함께 교회에 오게되면, 나란히 앉아 아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사랑스런 눈길까지 주고받는 모습이 보였다.
저들부부의 사랑이 성숙하게 해달라고 늘 기도하는 터라, 아마도 하나님께서 나의 애타는 심정을 보셨구나 하는 은근한 자만심마저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 중에 문득 그들 부부가 왜 휴전 중에 있는지 연유를 알아봐라 하는 음성이 스쳐갔다.
나는 부인이 혼자 있을 만한 시간에 전화를 하였다. 요즈음은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풀이 한껏 꺾인 음성으로 “제가 참아 야죠!”라고 하였다. 나는 참으로 고마워서 한마디 더하였다. “그래요. 남자 분들은 부인이 잘한다고 계속 칭찬해 주고 위해주면, 식구들을 위해 물불을 모르고 열심히 일만 한다고요. 그 남편 참으로 훌륭하고 좋은 분이니까,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더욱더 기도하고 신앙생활 잘하세요.” 그녀는 얼른 말을 받았다. “…요즈음 제가 기도와 찬송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아마, 상상도 못하실 것입니다” “…정말? 은혜 받았군요!” 성도가 은혜 받아 가정이 편안해 진 것 이상 더 큰 경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녀의 음성은 전혀 은혜로 감격된 음성이 아니었다. “…실은 목사님이 빨리 오셔서 예배를 봐주셔야겠어요. 얼마 전에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갔다가 소문을 들었는데, 저희 집에 먼저 살던 주인 남자가 지하실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갑자기 두려움에 쌓여지며 개미소리처럼 작아져 갔다. “…빨래를 하러 지하실엔 내려가려면, 기도와 찬송으로 준비하진 않고는 무서워서 내려 갈 수 없어졌어요. 그뿐만이 아니라, 집에 혼자 있을 때에는 더군다나…”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것 만 같은 그녀의 음성이 귓전에 들려왔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녀를 위해 전화로 간절히 기도 한 후에, 목사님과의 심방날짜를 약속하였다.
성경에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은 꼭 이방민족을 들어 이스라엘 민족을 다루셨다. 하나님은 그의 택한 자녀들을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지 찾아내 그들을 축복하시길 원하신다.
전혀 상상도 못한 방법으로 하나님은 그들 부부를 다루고 계셨고, 뒤늦은 신혼의 꽃이 움터 나오고 있었다.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드디어 체험하며 조심스럽게 하루를 살아가는 저들의 기가꺽인(?) 겸손한 모습이 어여쁘기만 했다. ‘진작 그렇게 사이좋게 살지!’ 흉가를 통해 다루시는 하나님의 유머에 나는 배가 아프도록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윤 완희, 6/18/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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