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움직이는 아이들

안녕하세요? 요즈음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어떠합니까? 긴 여름방학을 보람있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겠지요? 요즈음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갖으면서 아이들의 스케줄을 따라 이곳 저곳을 다니다보니 덩달아 저도 많은 것을 배우고 견문이 넓어지는 경험을 갖게됩니다. 특히 이민생활을 하는 이민 일세들은 아이들을 통해, 처음에는 영어도 배우고 이곳의 생활방식과 사회경험도 갖게되지요. 그런데, 요근래엔 이민사회 뿐만이 아니라 사회곳곳을 이 어린이들이 어른들을 움직이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 속에 과연 어른들의 선 자리는 어디인가 다시 한번 자리 매김을 해 보는 창이 열린 시간을 갖겠습니다. 먼저 찬양을 듣습니다.

한국에서는 요즈음 청소년들 간에 학교자퇴를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답니다. 학교를 자퇴하는 아이들이 공부를 못하거나 불량한 청소년들이 아닌, 모범생이며 공부도 상위권에 드는 학생으로서 다만, “꿈을 뺏기는 제도교육”이 싫어 학교를 자퇴한다는 것입니다. 즉 불필요한 암기식 공부와, 하루 14시간의 포로 수용소와 같은 학교 생활을 견딜 수 없어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지요. 마치도 지상목표는 대학진학이며, 그 목표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식의 사회구조에 질려버린 아이들이 어른들을 향한 무언의 항변이 되겠지요. 지금은 이곳선 별로 쓰지 않는 말이지만, 오죽하면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있을 까 하는 딱한 생각이 듭니다. 제도가 잘못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고쳐나가지 못하는 사회구조 속에 똑같은 잘못을 번복하고 있는 어른들을 향해 일침을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또한 요즈음에 AIDS퇴치 기금마련을 위해 자전거 세계일주 중에 있는, 캐나다의 베트롱 부드로씨(42세)가 있습니다. 94년 8월부터 첫 페달을 밟으며 세계일주를 시작한 그의 동기는 어린 딸로부터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당시에 13살이던 딸아이가 “아빠는 돈만 아는 불행한 사람으로 보인다”라고 한말에 충격을 받은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일은 돈을 위해 열심히 일하였으며 자신은 마치도 돈을 버는 기계 외엔 아무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되어 고민 중에 있었답니다. 그러다가 동생이 AIDS로 죽은 어느 중년여인의 슬픔을 보고 저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적의 꿈이었던 자전거 세계일주를 통해 AIDS의 참상을 알리고 더 나아가서는 모금을 위해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업을 정리하고 미국 서부해안을 첫 코스로하여 98년 8월, 미국 동부를 끝으로 세계일주의 여정을 마치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세계최고의 행복한 사람이 되어 오늘도 페달을 밟으며 AIDS예방 퇴치 캠페인을 벌이고 있습니다. 아이의 맑은 눈으로 바라본 아빠의 삶을 진단함으로 전혀 새로운 세계로 이끈 결과를 갖게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천진한 장난과 놀이 속에서 던져지는 말 한마디, 행동에서 우리는 의식이 깨어나는 경험을 할 때가 있지요. 그럼에도 장난과 놀이는 어린 아이들의 특권임에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나 일찍 그들의 놀이를 빼앗는 예가 있습니다. 마땅히 뛰고 장난하고 사고를 내고 말썽을 한창 일으킬 애들을 붙잡아 놓고 눈 높이 교육, 쿠몬 수학교실, 영재 교육, 예능교육이라 하여 일찌감치 아이들을 붙들어 두고 꼼짝을 못하게 합니다. 입시지옥이라는 단어조차 없는 곳에서 아이들을 이곳 저곳으로 헤매며, 내모는 훈련을 한다는 것이지요. 이 사회에선 책상머리에 앉아서 배우는 것 이상의 환경과 도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책상머리에 만 앉히려 하는 예가 있습니다. 구태여 일 이등을 가려주지 않는 학교에 찾아가 우리 애가 반에서 몇 등이나 했는지가 행여 관심의 초점이 아니십니까? 공부 잘하는 형을 공부 못하는 아우와 비교하여, 차별하거나 업신여기는 부모의 태도가 은연중에 나타나진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 가정에서 이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랍니다.

많은 아이들이 자신은 무가치하고 못난 아이로 고민합니다. 그것은 외부로부터 오는 열등의식보다는 부모로부터 오는 무관심과 점수에 지나치게 예민함에서 오는 절망감이지요. 우리 아이들이 피부가 다른 아이들 틈에 끼여서 학교에 다니는 일은 생각보다도 많은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게됩니다. 이곳에서 태어났고 동등한 시민권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소수의 동양인으로서 늘 이방인 취급을 받게되지요.

시인 윌리암 워즈워즈는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또한 칼릴 지브란씨도 아이들에 대해 말하기를 “아이들에게 사랑은 줄 수 있지만 생각까지는 줄 수 없다. 아이들은 그들 자신의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몸은 집에 잠을 재울 수 있지만 영혼까지 집에 재우지는 못한다. 아이들의 영혼은 내일이라는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어른들이 꿈속에서도 찾아 갈 수 없는 곳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아이들에게 어른을 닮으라고 해서는 안된다. 삶은 뒤로 가지 않으며 어제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다만 살아있는 화살인 아이들을 쏘아대는 활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동포사회의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주고서도 때때로 절망하는 이유는, 저들의 영혼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어른들이 밤낮으로 일하는 사이에 그 천진난만하기만 했던 아이들은 어느덧 성장하여, 부모와는 전혀 다른 교육과 배경 속에 순간에 자라납니다. 한집에서 한솥밥을 먹고살면서도 부모의 세계와 너무나도 먼 저들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로 잡아 넣으려하니 때로는 서로가 용납 할 수 없는 아픔이 생기고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게 되지요.

바로 얼마 전에 밤 외출을 말리는 어머니의 말씀을 거역하고, 차를 몰고 나가던 십대의 딸아이의 차에 매달렸던 어머니가 차에서 떨어져 죽은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홧김에 차를 몰고 나갔다가 비로소 본 정신이 돌아온 십대의 딸이 평생을 죄의식 속에 살 일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남의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행복한 아이들은 저들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부모 밑에서 맑고 티없이 자란 모습들이지요. 저들은 어른들을 깨어나게 하고 자극시키는 순수가 크리스털처럼 투명 됩니다. 그러나, 불행한 어린이들은 경쟁과 탐욕, 성공만을 염두에 둔 부모의 손에 자라나는 아이들이지요. 이 아이들은 세속적인 욕망만이 자신이 잡을 수 있는 최선의 목표로 삼고 출세와 성공만을 위해 달리게 되지요. 꿈이 없고 인간미를 찾을 수 가 없지요.

자식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 세계를 짊어질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이번 여름 동안에는 아이들과 놀이를 통한 인성교육, 믿음 훈련에 힘써 보시면 어떠세요? 아이들과 함께 부르는 찬송, 아이들의 손과 손을 마주잡고 드리는 기도, 내면 세계의 발굴에 함께 힘 쓸 때, 저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성장케 될 것입니다.

성경 잠언 14장 27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라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 할 때, 아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질 수 있고 저들의 영혼과 가까이 만나리라 믿습니다. 이번 주간도 미래라는 집에 살고 있는 우리의 자녀들과 함께 비전을 함께 나누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창이 열린 숲속에서>

안녕하세요? 지난 7월4일 독립기념일에 우주 탐사선 패스파인더호가 화성에 도착함으로 신비에 쌓여있던 화성의 모습이 안방에까지 비쳐지는 놀라운 일을 해내고 말았습니다. 세계가 흥분과 놀라움 속에 또 다른 우주에 대한 비전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세계를 놀라게 하고 우주에 대한 꿈을 한걸음 앞서게 한 이 화성 탐사의 뒷면에는 미 항공우주국 직원들의 끊임없는 노력과 ‘할 수 있다’라는 신념과 비전이였음을 말 할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화성 탐사에서 일어날 갖가지 훼방거리와 난관들을 생각하여, 항공국 연구소에 ‘그렘린’이라는 훼방꾼을 만든후, 다른 엔지니어들이 머리를 짜내어 놓은 모형들을 훼방하고 예기치 않은 난관을 만들어 놓는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성에서 일어날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는 세밀함을 준비하였습니다. 우주국 직원들은 지난 수십년동안의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수많은 그동안의 성공이 실패가운데서 핀 꽃과 같음을 알기 때문이였습니다.

우리 삶도 마치도 화성탐사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어떤 장애와 난관이 대비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 살아가지요? 그러나 우리 속에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는 삶의 태도”, 즉 “할 수 있다”라는 태도는 우리에게 독립기념일에 찾아온 화성탐사와 같은 놀라운 일이 우리 삶 속에도 일어난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 할 때

우리가 할 수 있다 할 때,

엉겅퀴로 뒤덮인 땅, 옥토가 될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다 할 때,

녹슬은 마음과 마음은 열릴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다 할 때,

높은 담과 골짜기는 평지가 될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다 할 때,

반석에서 샘물터지고, 광야에 길을 낼 수 있으며

우리가 할 수 있다 할 때,

주께서 동이셨던 수건 우리도 동이고

형제의 발을 씻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다고 할 때,

작은 것으로 부터의 기쁨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부터의 소망과

상처난 것들로 부터의 치유와

매인 것들로 부터의 자유가 선포됩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할 때

이 모든 것들은 영원한 침묵 속에 갇히우고 말 것입니다.

윤 완희, 7/13/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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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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