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향기가 되어 떠난 사람

그날 아침은 봄비가 대지 위에 촉촉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봄이라지만 교회 주변의 마른 나뭇가지가 아직은 을씨년스럽게 보였고, 긴 겨울을 보낸 다람쥐들의 발걸음이 젖은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통하여 교회에 홈레스 프로그램이 진행된지 겨우 둘째 주가 되는 토요일 아침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인 클리프(Clift)와 부인인 에드니(Edna) 부부가 교회 지하실에서 집없는 여인들을 밤새 돌보며 어찌 지냈는지 염려가 되 었습니다. 홈레스 여인들은 이미 차가 와서 데리고 간 후였고, 두 부부는 어느새, 홈레스들을 위한 간이 침대와 침구들을 모두 정리한 후였습니다. 클리프의 가장 즐겨하는 콧노래 소리를 지하실의 계단 위에서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아! 목동들의 피리소리들은 산골짝마다 들려 나오고···”

“굿 모닝! 클리프, 에드나” 언제나 쾌활한 이들 부부는 여느 때보 다 더욱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굿 모닝! 우리가 오늘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난 줄 아세요? 글쎄, 지난여름 캠핑갈 때 사용했던, 괘종시계의 섬머 타임을 고치지 않은 것을 모르고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났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잘됐다고 생각하면서 부엌 청소를 말끔히 하였답니다!” 그러고 보니 교회의 부엌이 어느 틈에 깨끝해 보였습니다.

“와우! 정말, 신혼 살림살이 부엌 같군요! 피곤하시지요?” 예순이 넘은 부부의 얼굴에 피곤한 안색이 역력하였습니다.

“예, 피곤하지만 이처럼 기쁘고 만족한 아침을 맞이한 일은 내 생 애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역시 남을 위해 시간을 들여 봉사하고 섬기는 일을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나니, 그 기쁨의 깊이를 알게 되는군요!”

클리프의 명랑한 어조에 에드나가 동감하는 키스를 남편에게 보내었습니다.

“집에 가셔서 먼저 잠을 푹 주무시는 것이 좋겠군요!”

“맞아요! 오늘은 비도 오겠다, 가서 푹 자야 되겠어요!”

목사님과 나는 그 부부에게 따뜻한 포옹을 서로 건네주고 목사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차에 시동이 걸리는 소리가 아직도 귀에 역력한데, 목사관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에드나의 차분하고 무거우며 격한 음성이 조금 전의 그녀의 명랑한 어조와는 전혀 톤이 다르게 수화기로부터 튀어나왔습니다.

“그가, 심장마비를 일으키어…”

믿을 수 없는 그녀의 음성이었습니다. 놀라움은 내 속에 노도와 같은, 저항의 기도를 일으킵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우리는 목회를 통하여 많은 이들의 죽음을 종종 대면했으나, 20여 분 전의, 전혀 죽음의 그림자조차도 상상치 않았던 그의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목사님의 오른팔처럼 일하시던 교회 중직의 죽음은 교회로서는 큰 상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클리프는 집앞의 드라이브 웨이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끈 직후,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대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죽음 앞에 슬픈 것. 그와의 육신으로서의 영원한 작별인지도 모르고, 돌아서 왔음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실제의 작별은 세월을 통하여 이루어지는가 봅니다. 그가 있었던 자리에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상실의 아픔이 더욱 깊어짐을 어찌할 수 없어 탄식할 뿐입니다.

그는 떠나가면서, 그의 평소 유언대로 모든 몸의 장기와 오른쪽 눈 (왼쪽눈은 당뇨로 인해 거의 실명된 상태였음)을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은 화장을 하여, 그가 수십 년을 사랑으로 봉사하던 교회의 잔디밭 한쪽 구석에 이미 먼저 가서 누워있는, 교우 곁에 아무런 표시도 없이 누웠습니다.

교인들은 평소에 그가 많은 병에 시달리고 있었음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관지 천식과 당뇨, 동맥경화증으로 고생을 하고 있었으나, 그의 얼굴은 언제나 밝고 유머에 늘 민감하였습니다. 몇 년 전, 그가 노란 가발을 쓰고 몸에 꽉 끼는 옷을 입은 채 피아노 옆에 앉아 노래하던 일을 누구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땀을 흘리며 불던 색소폰의 음률을 누구나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잘 어울렸으며, 처음 백인 교회에 발을 들여놓는 흑인 교우들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어린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우는 아이들은 장난기 어린 그의 얼굴을 보기만 하여도 울음을 그치곤 하였습니다.

클리프는 약 4년 전에 두 다리를 잘라야만 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양쪽 허벅지에서부터 다리밑까지 피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두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며, 어디에 부딪혀도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집안의 모서리에 부딪혀 상처가 나면, 아물 줄을 몰랐습니다. 다리의 통증은 몸의 상체로 올라오기 때문에 의사는 두 다리의 절단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잘릴 경우를 대비하여 이층에 있는 침실로 올라가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아래, 아래층의 부엌 옆에다 침실을 새로 마련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그의 다리를 자르기를 원치 않는 부부의 뜻을 따라, 저들 삶의 여정에 함게 하기로 했습니다. 더불어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 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4~16)

목사님은 클리프 부부와 교회의 직원들에게 그의 다리를 위하여 특별 기도를 간곡히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가 다리를 수술하기 위하여 병원에 입원한 후 마지막 엑스레이 결과를 보는 날, 의사는 목사님을 다른 방으로 직접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고개 를 갸우뚱거리면서 병세가 호전되어 가고 있다며 엑스레이를 일일이 설명해 주었습니다. 수술을 꼭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는 진단이, 다시 내려졌습니다. 클리프는 다리의 통증을 견디지 못하여 차라리 두 다리가 없이 통증을 면하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세가 호전되어 간다는 믿을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의 말을 듣고 돌아온 그들 부부는 밤이 늦도록 전축을 틀어놓고 리빙룸에서 부부가 기쁨의 댄스를 추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다리 운동을 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다리에 통증이 오면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발부리만 말없이 들여다 보던 그였습니다. 그는 아내와도 거의 대화를 거부하다시피 하며 곧 휠체어에 실려 다닐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절망의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후, 클리프 부부는 완전히 하나님의 손에 붙잡힘당한 충실한 일꾼으로 변화되어 갔습니다. 남 앞에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만 살아가던 그는, 영적인 눈과 귀가 열려지면서, 신앙의 습성에 젖어 살던 과거를 청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성경공부에 앞장서고, 교회의 봉사에 말없이 앞장서기 시작하였습니다. 매주 수요일에 동네 노인들을 위한 교회의 점심식사를 위하여, 그는 월 요일부터 시장을 봐서, 화요일에는 국을 만들고, 수요일에는 주방 장으로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봉사하였습니다. 육신의 병을 성령의 힘으로 이겨나가는 그는 막 아침잠에서 깨어난 청년의 활기 넘치는 풋풋한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식 날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하여 많은 친구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일순간에 미망인이 된 에드나는 수백 명의 조문 객 앞에서 담대하게 일어나 남편이 보내었던, 지나간 4년간의 삶의 변화를 뚜렷이 간증하였습니다. 클리프와 보낸 37년 간의 결혼생활 중 지난 4년간 우리는 가장 행복했고 복된 시간을 보냈습니다. 4년 동안 저희의 영혼에 가장 평정된 평화와 생명의 복된 삶을 살았 습니다.”

장례예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누워 있는 클리프의 모습 앞에 인 간의 가장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돌아서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파란 새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솟아오릅니다. 겨울 내내 몸서리치게 불어대던 눈보라 속에도 대지는 어김없이 생명을 회생시키고 봄맞이를 서두르고 있습니다. 긴 겨울을 보낸 다람 쥐들의 발길이 더욱더 부산하게 마른 가지 위를 오르내리고, 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에 풀빛 가득 봄이 얼굴을 들어올립니다. 지상의 봄을 뒤로 미루고 천상의 화려한 봄을 맞으러 떠나간 하나님의 자녀, 클리프의 육신은 한줌의 재가 되어 에드나의 침대맡에 아직 도 놓여져 있습니다.

“아직은 땅이 얼어서 그를 묻을 수가 없어요. 가슴 저리게 꽃향기가 천지를 덮는 날! 그 날엔, 그를 흙의 품으로 돌려보낼 것 같아요.”

그녀의 촉촉한 눈매에 그리움이 샘물되어 솟아오릅니다.

아아! 이 봄엔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꽃향기되어 나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 윤 완희, 도시에 남은 사람들, 선물,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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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aeHun Yoon

Retired Pastor of the United Methodist 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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