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훌륭한 은퇴 교수님께서 자녀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자신의 아들이 대학 가기를 완강히 거부하였을 때의 부모로서 겪었던 경험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그 교수님께서는 처음에는 있을 수 없는 아들의 행동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고, 삶의 희망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비애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은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 동안 있는 돈 없는 돈, 다 들여가면서 학원으로 과외선생 앞으로, 아들의 장래를 위하는 일이라면, 모든 것을 다 바쳐가면서 여느 부모에 못지 않게 뒷바라지를 했는데…! 도대체 이해하려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당신은 아들하나 대학에 못 보내면서 어떻게 강단에 서서 가르친단 말이요?’ 하는 질책이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교수님은 아들에게 ‘제발 이 부모의 체면을 봐서라도 대학을 가달라’고 사정까지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말하기를 ‘더 이상 책상 앞에 앉아 무력한 젊음을 보내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을 나도 찾아야겠다!’는 것이였습니다.
상상에도 있을 수 없었던 소동을 한바탕 치르고 몇 달이 지나니, 교수님은 오히려 모든 일에 초연해지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일류대학 졸업자는 인생의 성공자라는 논리가 만연해진 세대 속에서, 아름다운 정서와 창조적인 사고와 자신의 독특성을 차단 당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류대학이라는 목표 속에, 획일화된 일류 상품으로 번지르르하게 포장된 채, 삶의 본질을 잃고 고통하고 있는 인간의 아픈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교수님은 어느 날 아침, 시커먼 기름 때 묻힌 옷을 입고 정비소로 출근하는 아들의 활기 넘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네가 인생의 선배로구나!’ 하며 고개를 끄떡이셨다고 합니다.
저도 조금은 비슷한 경험을 저희 집 둘째 아이에게서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올해 14세 된 세림이는 5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훌륭한 선생님 밑에서 사사를 하였는데, 약 3년 전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는 일에 대해 취미를 잃는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지난해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하는 말이, ‘더 이상 바이올린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는 것이였습니다. 저는 너무나 실망이 되고 답답했습니다. ‘기왕이면 조금 더 해서 대학 갈 때, 장학금이라도 얻으면 좋으련만!’ 하는 조그만 바램 이였던 것입니다. 결국 아이의 완강한 태도 앞에 포기는 했으나, 마음으로는 무척 섭섭했습니다.
그 후에 아이는 바이올린에 빼앗겼던 시간들을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하고 있는데 참으로 놀라운 일들을 발견케 되었습니다. 아이는 지난해 바이올린을 그만 둔 직후에, 그림과 운동에 몰두하게되어 그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여, 몇 달 사이에 County의 갖가지 미술행사에 최종 결승자가 되어 우승을 하는가 하면, N.Y State에 까지 올라가 2등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배드민턴에도 상당한 열의와 취미를 나타내어, 방과후에 마음껏 사춘기의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것을 봅니다.
전에 보지 못했던 아이의 밝은 표정 속에, 하마터면 하기 싫은 바이올린을 붙들고 우울한 사춘기를 보냈을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게 됩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전혀 부모의 기대치 않은 일들을 어느 순간에 맞이할 때가 옵니다. 그때는
그 동안 자녀를 위하여 했던 일들이 오히려, 저들의 능력과 소질을 박탈시키고 매장시키며, 열의를 빼앗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무엇하나 부모의 마음에 흡족하게 해내는 것이 없게되고 아이는 인생의 자신감을 얻지 못하고 사는 것이지요. 자녀들에게 삶의 대로를 열어주는 일, 저들의 가는 길을 비켜주는 일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주이시면 서도 인간을 획일화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자유로운 생각과 의지, 행동 속에, 노동의 신성함과 여가를 통한 삶의 여유를 인간이 누리며 살기를 기뻐하시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윤 완희, 4/22/1997
